이 말을 따라 해 보세요. "대충 해!"

2025. 연구부장

by 좋아해

“교육과정 일을 하면 시간을 앞서 사는 것 같지 않아요?”

“맞아요. 항상 이 삼 개월 뒤의 일을 미리 생각하니까 그러는 것 같아요. 다들 학기말 작업하고 있는데, 저만 내년 이야기하고 학사일정 걱정하고 그래요.”

“진짜! 저도 그래요.”


학교에서 교육과정 업무를 맡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학교 현장에도 이것저것 추가된 내용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학자시(학교자율시간)라던가 학맞통(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던가 사회정서(사회정서역량교육)라던가 (줄임말 쓰지 말라고 교육하면 뭐 하나, 교육청이 별 걸 다 줄이고 있는데).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처음은 누구나 부담스럽고 두렵기에 새로운 교육과정은 환호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 처음을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함께 일한 고마운 분들과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자고 모였는데 다들 내년도 학사일정에 대한 걱정과 조언을 주고받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몇 년 만에 먹는 리조또와 파스타의 맛은 어찌나 환상적인지! (우리 집 식구들은 국밥을 너무 좋아해서 외식으로 양식을 먹지 않는다). 혼자서도 버섯 크림 리조또와 항정살 로제 스파게티 정도는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지만, 나는 교양 있는(?) 사회인이라고, 스스로를 수없이 세뇌하며 야금야금 아껴 먹었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자녀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왔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 수많은 갈등, 예상되는 걱정과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선생님 한 분이 말했다.

“부모가 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니까, 그냥 아이가 안전하기만 하면 좋겠어요. 담임 선생님이 뭘 더 재밌게 해 주고 활동을 더 많이 하고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요. 아이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얼마나 짠해. 제가 1학년 담임 하고 있는데, 1학년 애기들 진짜 작거든요. 그런데 가방은 이따만해요!”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은 허공에 팔을 벌리며 덧붙였다.

“이만큼 큰 가방을 그 쪼그만 아이가 매고 혼자 서 있으면 너무 애처로워. 그런데 저는 그런 것만 눈에 보이고 수업은 대충 해요.”

“선생님, 말로는 대충 한다고 하시는데, 1학년에 진심이신대요?”

“어유 아니에요. 그런데 1학년 아기가 자기보다 큰 가방 메고 혼자 서있는 거 보면, 마음이 막 안타까워요.”

아이의 한 장면만 보고도 애처로운 마음이 절로 생기는 그녀가, 절대 수업을 대충 할 리 없다. 진짜 대충 하는 사람은 자기 결점을 꺼내 보이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 선생님에게는 운율이라는 귀여운 2학년 자녀가 하나 있다. 운율이도 엄마를 닮았는지, 엄마의 한 장면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운율이는 엄마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엄마 나 따라 해."

“따라 해?”

“응! 내 말 따라 해. 해 봐, 대충 해!"

“대충 해."

“엄마가 열심히 해도!”

“엄마가 열심히 해도.”

“교장 선생님은 몰라!”

“교장 선생님은 몰라. 크크크크 뭐야. 뭘 몰라.”

“엄마 목 다 쉰 거 교장 선생님이 알아? 엄마 1학년 이제… 이제, 그만 가르쳐! 1학년들이 말 안 들어서 엄마 목 아프잖아. 엉엉엉어엉어엉.”

둘의 귀여운 대화를 듣자마자, 모든 선생님이 와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대충하래, 열심히 하는 거 교장 선생님은 모른대. 크크큭!’


너무 열심히 웃어서일까.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를 걱정하는 운율이의 마음 때문인지,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가 웃겨서인지, 대충 하고 싶어도 대충 할 수 없는 태생적인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대충 하는 게 아니라 내 몫이라도 잘하고 싶은 모범생 같은 마음 때문인지, 그 모든 마음이 찡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선생님들 눈가가 빨개지고 있었다. (너무 웃겨서 빨개진 거일 수도 있지만,) 나 역시 하하하핫! 웃으면서 몰래몰래 눈물을 찍어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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