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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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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민 Nov 03. 2020

국가가 나를 위해 분노했던 때가
있었다.

MBC 다큐플렉스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나요’를 보며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는 현재 비판도 있긴 하지만 임기 초 사드 문제에서도 균형이 잡힌 외교 전략을 펼쳐서 잘 봉합했고 한반도의 중재자로서 북한과의 관계를 선순환으로 복원시키는 등 성과를 거뒀다. 또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등을 통해 대한민국 내의 적폐를 없애려는 노력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부족하다는 개인의 판단이니 일단 차치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라 생각한다.


한편 나와 내 주변은 이런 거대한 이슈에 잠잠했다. 초대형 방사포가 등장한 북한의 열병식, 자산격차를 무한 확대하는 부동산 제도, 지지부진한 검찰개혁, 출발도 못한 언론 개혁, 불법 승계에 올인해온 삼성재벌…. 분노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성세대에게 질책당한다. “청년들은 어린이가 아니다. 더 큰 문제에 분노해라.”,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세대이다. 이런 문제에 왜 관심을 갖지 않느냐” 이렇게 질책해도 할 말은 없다.


내 친한 동생 A는 1일 8시간, 8주(40일) 간 근무하고 150만 원을 받는 현장실습생을 시작했는데 자기 일을 못 끝냈다며 일주일에 3~4번은 야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거대한 담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친구 B는 촬영 프리랜서의 일감이 코로나로 줄어 처음 해보는 배달 알바와 상하차 알바로 고단하더라도 국가의 일에 응당 분노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도 아르바이트 2개와 인턴,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까지 병행하면서도 국가의 거대한 숙제를 함께 고민했어야 한다.     




나는 취업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정부와 국회 등의 국가기관은 청년의 문제를 수치로만 이야기한다. 나의 오늘에는 신경을 써준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왜 내가 MBC 다큐플렉스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나요’ 편을 보아서야 국가기관이 내 일에도 고민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야 했을까. 노회찬이 “법도 인간의 체온이 느껴져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안을 왜 만드냐”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이 말과 부합하게 노회찬은 내가 오늘 부딪혀있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법안을 발의했다.

다큐플렉스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나요?>  중 노회찬이 발의한 법안 

그가 발의한 법안과 더불어 그가 신경 썼던 것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줬던 사례가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이다. 한 정당의 대표가 되어 진행한 첫 연설에서 그는 6411번 버스를 이야기했다.

새벽 3시 정각에 일어나 새벽 5시 30분이면 강남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그는 경기고, 고려대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대학 시절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삼원 섬유 노동자 출신의 유명한 노동운동가 김지선과 결혼했다. 그의 일반 시민들의 고민이 무엇인지에 대해 수치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가가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체온이 담긴 법안들을 발의할 수 있었다.




날 위해 국가기관과 기득권을 질책하던 국회의원이 있었다.


노회찬은 서울고등법원에서 감형이 기업과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의 공로를 감안하여 빈번하게 일어나나

 ‘수 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을 한다거나 혹은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노동자이므로’ 

진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우리 사회의 일반 서민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함을 꼬집었다.

다큐플렉스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나요?>  중 노회찬의 2004년 10월 14일 서울고등법원 발언

다큐 플렉스에서는 노회찬의 생전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혔던 ‘삼성 X-파일 명단 공개’ 사건을 다뤘다. 이 일로 2013년 노회찬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2005년 8월 18일에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던 다른 국회의원들과 달리 노회찬이 삼성 X-파일에 나온 뇌물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던 것이 이유이다. 8년 동안의 법적 공방 끝에 실명 공개의 이유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이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다.


노회찬은 먹고살기에 바쁜 시민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그는 기득권과 국가기관의 잘못에 분노했고 그들을 질책했다. 어떤 일에서건 약자를 때리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권력층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법 승계에 올인한 삼성을 언론을 통해 질책하는 건 어렵지만 그들을 질책하지 않는 청년층을 질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노회찬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히 권력층을 질책했다.




MBC 다큐플렉스에서 진행한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어요?’ 편을 보며 내가 노회찬이라는 국회의원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나는 노회찬이 대단한 일을 척척 잘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결점이 없어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가 어려운 사람 옆에 있었고, 새로운 생각을 했기에 좋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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