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Review
그는 즐거워서 웃지 않는다. 그의 경박하고 기괴한 웃음은 그가 웃는 게 아니다. Pathological laughter and crying (PLC)라는 정신질환이다. 그래서, 웃는 광대의 분장을 하면서도 입 안으로 손을 넣어 웃는 표정을 억지로 짓는 것까지 본래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도 그는 스스로가 못마땅하다.
하지만 아서 역시 대부분이 그렇듯 평범한 삶을 꿈꾼다. 발작이 멈추는 것, 평범한 사랑을 만나 행복해지는 것, 코미디언으로서 성공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 웃음이 멈추지 않는 한 평범한 삶을 이루긴 힘들다. 다른 이처럼 행복할 때 그 역시 춤을 춘다. 광고판을 돌린다거나 춤을 추며 발작적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웃고 즐긴다.
다만 아무도 그와 춤을 추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 마저도) 다만 그는 혼자서 아무도 없는데서 춤을 춘다.
그 웃음은 병리학적 구분이 있긴 하지만, 폭력과 어머니의 정서불안, 망상이 만들어낸 방어기제다. 불안할 때 다리를 떠는 것처럼, 발작적으로 튀어나온다. 그 발작에 대해 오히려 심리적 강박이 있다. 그 역시 그의 어머니에게서 기인한다. 그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 그는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그런 강박 속에서 괴롭게 보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그에게 위안을 주지도 여유도 자리도 내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복지라는 이름의 사회 시스템 마저도. 결국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과 자신의 망상과, 자신의 목표가 그리고 자신의 존재도 어머니의 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자신 그 자체를 부정하게 하는 어머니의 존재를 더 이상 아서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불타게 된다.
본 작이 배경으로 삼고 있던 7-80년대부터 현대까지 이런 약자들이 결국 범죄자가 되는 이야기와 현실은 많다. 드니로를 캐스팅해서 오마주 하는 '택시 드라이버'를 비롯해, 많은 영화들이 그런 약자들을 다뤄왔다. 또 여러 나라와 사회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에 대한 뉴스는 너무 많았다. 배트맨 영화 시리즈인 <다크 나이트>에서 브루스 웨인이 '그저 사람들에게 선의를 퍼뜨리고 싶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조커는 '그저 자신의 분노를 공감받고 싶었을 뿐인 것'인데 그가 살아가는 세상에선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웨인이 위선자처럼 연출되었어도 아서의 모든 상황을 알고 '광대놀음'이라고까지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조커 역시 자신이 불러일으킨 광기가 토마스 웨인을 죽게 만들진 몰랐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분노와 관심과 냉소가 이어지는 사회의 한편에서 반드시 눈먼 복수심과 피해자가 발생한다. 마치 슬랩스틱처럼 분노의 연쇄 과정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증오와 혐오는 우스울 정도로 쉽게 재생산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모든 존재들에 대해 복수하고 나서 더 나아가서는 아서 그 자신이 의도하진 않았으나 사회적 존재를 부정당하게 만든 시스템에게 복수하게 되고 자신의 웃는 표정을 자신의 피로 깊게 그려낸다.
결국 이 조커라는 악당은 이 영화에서는 마치 원작 코믹스처럼 '음모를 꾸미다가 화학공장 원료에 추락해서 태어난 것처럼 우발적으로 발생된 것이라거나 대단한 계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 번만 더 따듯한 미소로 화답받고 고담시의 쓰레기들을 방치했던 것과 달리 사회가 그들을 신경 썼다면 그늘진 한 켠에서 마치 슈퍼 쥐처럼 급속도로 늘어나고 또 커지지 않았을 어쩌면 또 다른 우리들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것. 짓궂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나, 의무적인 상담사, 자기만 생각한 뻔뻔한 직장동료, 수감 병동의 의사도 어쩌면 우리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것. 쉽게 우리는 묻지마 범죄를 말하며 또 정신병의 환자로 치부하고, 그 원인을 다른데 돌리고 또 그 환자를 잘 제어하지 못한 시스템을 비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애써 눈을 돌려 시스템의 문제나 원인으로 치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진심으로 웃게 된 조커는 그가 작중에서 가장 행복할 때만 하는 행위인 '춤'을 계단을 내려오거나 광기의 군중들 앞에서 '더 이상 아닌 척할 필요가 없어진 기쁨에' 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애써 자신의 피로 그려낸 미소가 기괴한 것처럼,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신을 찾아서가 아니라 이젠 분노의 껍데기만 남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더더욱 공허하고 씁쓸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면 몇 가지 루틴이 있다. 영화의 황홀함에 빠져 트리비아를 더 찾아본다거나, 맥주에 영화에서 봤던 음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어떨 때는 삽입된 음악에 빠져 몇 시간씩 그 음악을 반복해 듣기도 한다. <Joker>는 소주가 땡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