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친절과 생채기를 원한건 아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Review

by DeeKay SHIN


2살박이 딸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김지영은 어떤 독특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단어를 연상해보자면, '해리성 인격장애', '다중인격' 같은 것. 그렇게 공격적이지도 않고, 또 살아있는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소위 말하는 '빙의'로 불리는 심령현상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남편 대현에게는 겁나는 일. 그래서 대현은 그녀가 상처입을까봐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환경을 가지게 되는데에 걱정한다.


영화는 처음 그 증상이 발생한 상황을 보여준 후, 육아와 가사, 그리고 앞선 상황에서의 인물들과의 갈등관계와 증상때문에 다시금 직장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의 이야기의 갈등 부분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그녀의 다른 증상들과 과거의 일들을 오버랩하면서 그녀의 증상이 단순한 산후우울증 때문만이 아님을 설명한다.


영화의 시선은 원작이 주요한 주제로 내놓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외에도 개인 김지영에 영향을 주는 가까운 이들의 무신경함에 주목한다. 분명 남편 대현은 아내의 증상 때문만이 아니라도 그녀를 아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녀의 증상을 알리지않고 그녀를 감싸려던 것이 도리어 상처를 준다. 그녀의 친정 아버지와 그녀의 시어머니도 역시 그녀를 아끼고는 있지만, 미안함과 답답함이 또다른 상처를 주게 되버린다. 영화는 분명 여성서사와 여성의 아픔을 언급하고 있지만, 성별을 떠나 어쩌면 일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 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넌지시 지적한다.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한참 벗어난 눈 먼 친절을 베풀며 또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생채기를 사박사박 발아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김지영이었고 여성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입고 있는 생채기인 것.


영화는 이렇듯 원작이 집중하려던 것에 한껏 집중하다가도,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그 집중을 푸는 전략을 취한다. 원작은 담당 정신과의사가 그녀의 상담을 중심으로 사례들을 리포트하는 형식이다. 원작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그 한 명에 집중시키는, 다소 무리하지만 날카롭고 냉소적인 그 시각이 그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와 그녀의 주변인물로 퍼뜨려서 주인공이 아닌 그 '이야기'에 대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야기는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 영향을 받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어, 공감호소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주인공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 영화가 영화로서 성공하는 것은 바로 이 차별화에서 시작하는데, 원작의 자극적인 (어떻게 보면 그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쾌감으로 작용했을) 부분에 너무 집중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 일부러 더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적절한 이야기의 농도를 유지했다. 이미 원작이 널리 알려져 더 몰아부쳐도, 좀 더 불친절해도 될 영화의 감정과 서사를 그 속에서 담담하고 매끄럽게 끌어간다.


원작이 정신과 의사가 보여주는 행동때문에 다소 냉소적인 끝맺음을 하는데 비해, 영화는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마무리한다. 김지영은 치료와 동시에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 남편 대현 역시 육아휴직을 통해 가정과 아내를 여전히 아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쉬운 해피엔딩이라고 맥 빠진 원작의 팬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미덕은 단지 이런 정돈된 톤의 서사만이 아니다. 김지영의 어머니 '미숙' 역의 김미경 배우의 가슴 절절한 연기를 비롯해, 가족들의 사과가 이어지는 장면도 훌륭하다. 미숙이 분노하는 서사적 감정의 해소장면도 탁월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갈등의 해결은 예상보다 격정적이지 않다.



식탁에서 그간의 쌓인 감정 때문에 서로를 원망할수도 있었을텐데 "나 때문에 힘들었겠다" 라고 말한 김지영과, "나와 결혼하고나서 아프게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라는 대현. 두 부부가 각자가 두려워했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상대를 먼저 걱정하며 속을 털어놓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이 책을 포함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많은 남녀이슈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쩌면 82년생 김지영'들'에게도, 원치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한 것은, 눈 먼 친절과 날카로운 말의 생채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저렇게 식탁에 마주 앉는 것이다. 그 앞에는 케잌도 조명도 차도 필요없다. 오직 진심,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진심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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