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자기 아버지가 성공하는 걸 봐야 할거 아냐"

영화 <미나리> Review

by DeeKa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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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탁에서 '미나리무침'은, 식탁 한 켠에 있는 그저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은 곁들임 메뉴 같은 존재다. 메인 요리도 아니고 자극적인 맛도 아니다. 그래서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때는 고기반찬이나 소시지 반찬을, 역시 어린 미국인이라면 햄버거와 피자 같은 메뉴들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그런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더 편안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을 찾게 될 때가 있다. 나이를 먹고 다양한 요리와 식문화를 경험한 후 확고한 자신의 취향이 생겼다 하더라도, 식당이나 레토르트 상품에서 맛볼 수 없는, 가족만의 조리법이 담긴 음식을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걸 뒷받침하는 게, 몇 년 전 성인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이처럼 어릴 때 먹고 자라던 음식은 마음도 몸도 편안한 음식이라 하여 ‘comfort food’라고 부른다.... (중략)... 어느 직장에서 ‘당신에게 comfort food는 어느 것이냐?(What’s your comfort food?)’고 물었더니 답변된 음식 종류만 수백 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지역과 가정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고 입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기 있는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Macaroni and cheese’가 압도적 1위다. 미국인 35%가 가장 좋아하는 comfort food로 꼽았다.(이하 생략)

[What’s your comfort food? 정든 음식, 한국일보, 2015.04.03]


물론 우리로 치면 '(가정식) 콩나물국'이나 다른 따듯한 음식들을 댈 수도 있겠다. 앞서 말했듯, '미나리무침'은 곁들임 메뉴 같은 존재니까. 있는 듯 없는 듯, 딱히 당기는 메뉴도 아니다. 하지만 불현듯 생각날 때가 있고, 없으면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미나리>는 바로 그런 톤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정이삭 (Lee Isaac Chung)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서 애써 거리를 둔듯한 담담함과는 별개로 향수가 느껴지는 시선이 화면 곳곳에서 느껴진다.


미국 FOX채널을 통해 방영된 드라마 [워킹데드 (The Walking Dead)]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스티븐 연 배우와 한국에서 <청춘시대 시즌1,2>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한예리 배우가 주인공 부부를 연기한다. [아마겟돈] 등에 출연한 할리웃의 명품조연 윌 패튼 배우는 외지인을 환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배척하지도 않는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 아저씨 '폴'을 독특하게 풀어냈고, 반대로 [하녀]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한국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윤여정 배우는 가장 한국인다운 한국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다. 윤여정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을 비롯, 다수의 영화제에 수상 후보로 선정되거나 수상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78회 골든글러브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과 대중의 호평이 고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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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렇다. 1983년 한국에서 이민 온 가족의 아버지 제이콥과 어머니 모니카는 익숙지 않은 영어와 타향살이에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실패를 하고 아칸소로 이사를 온다. 상대적으로 싼 대지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한편으로는 맞벌이를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딸 앤과 아들 데이비드를 보살피기 위해 모니카가 한국에서 어머니 순자를 초청해서 같이 살게 된다. 도시생활만 해온 어린 데이비드는 트레일러의 집과 시골생활이 불편한데, 특히 외할머니 순자와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불편해한다. 쉽지 않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 제이콥과 모니카는 최선을 다하지만, 자꾸만 생기는 사업과 가족의 장애물 앞에 파탄 직전까지 이른다. 한편 데이비드는 순자와 결국 친해지지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병을 앓기 시작하고 순자는 그런 데이빗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데...


<미나리>는 앞서 언급한 미나리무침 같은 영화다. 굉장히 차분한 톤으로, 뭔가 터질 것 같지만 터지지 않는다. 감정이 터지는 부분도 있을 법한데, 그런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 전반적으로 담담하게 터치하는 부분이 있다. 건조하다기보다는 담백한 감정의 전달이다. 이것은 관객에 따라서 장단점이 크게 나뉠 수 있겠다.


"한 번쯤은 자기 아버지가 성공하는 걸 봐야 할 거 아냐"는 극 중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또 아내에게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자도, 이민자의 세대도 아닌 관객이라면 전반적으로 공감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이 담담한 터치의 영화 전개가 오히려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은 할 수 있다. 몇 년 전 대다수의 관객이 <국제시장>을 보고 감동했던 것처럼, 이민자가 여전히 많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미나리'에 대해 감동한 것이다. 그러나 흥건할 필욘 없지만 촉촉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칸소의 황무지처럼 가끔은 너무 먼지가 많이 일어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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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배우님이 호평받으시는 이유는 역시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어느 문화권에서나 할머니, Grandma 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는, 대부분 그렇게 인생의 황혼 즈음에서 우리에게 모든 걸 다 내주고, 우리가 그걸 겨우 자각할 때쯤 스러져가시기 때문이다. 저 영화를 본 사람의 대다수는 아칸소에서 살진 않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먼지까지도 정겹고 향수가 느껴지게 하는 건 손자 데이빗과의 에피소드 때문일 것이다. 윤여정 배우님의 연기는 성별과 인종, 공간과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각자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적 장치로서 할머니를 돌려세우는 손자, 손녀. 그리고 그 사건 이후 가족이 모두 거실에서 자는 모습, 미나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모습은 은유치곤 너무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미나리'가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관객들에게 그걸 설명해줘야 할 필요도 있었겠지만 은유에 대한 연출 면에서는 퍽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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