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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Oct 17. 2021

딸기를 보면 네 생각이 나

중국에서 만난 그 아이


중국 유학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새로운 기숙사로 방을 옮기며 때마침 대만에서 중국(大陸)으로 유학 온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친구의 이력도 좀 신기한 편이다. 대만에서 중국 본토로 유학을 온 것이니 말이다. 

본인 말로는 공부도 못하고 제남(济南)에 외가(外家)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온 것이라 했는데, 

반은 쫓겨나고 반은 도피인 셈이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이청화(李清华)이고 나보다 세 살 아래의 키가 아주 큰 여학생이다. 

나는 처음 청화를 보았을 때 한국 학생인 줄 알았다. 

세미 힙합 캐주얼을 입었고 보이쉬한 헤어스타일이 그 시절 한국 대학생 같았다. 


혼자 남은 유학생(留学生)과 혼자 온 본과생(本科生)인 우리는 

인사를 한 그날부터 수업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잠을 잘 때도 하루는 내방, 하루는 청화방에서 함께 잤다. 

청화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지만 속이 깊은 친구였다. 

나의 서툰 중국어를 기꺼이 이해해주었고, 심지어 중국어 선생님 노릇도 톡톡히 해주었다. 

중국에 온 지 몇 개월인데 그런 말을 틀리면 되겠느냐고 면전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그때마다 내가 기분이 상해 쏘아붙이면 

너의 중국어 실력은 싸울 때 특히 돋보인다며 은근히 화를 풀어 주기도 했다. 


내가 유학하던 당시 유학생들은 방에 커다란 중국 지도를 벽에 붙여 놓았는데, 

대만이 중국이냐 아니냐는 물음에 처음에는 대만은 중국의 외성(外省)이라고 대답했다, 

후에 대만은 하나의 독립된 국가라고 대답하는 그 아이를 보고 ‘우리가 많이 친해졌구나’ 라며 마주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빠르게 배우는 방법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특히 연인 사이는 자주 만날 뿐 아니라 대화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정말 괜찮은 방법이다. 

나는 중국인 남자 친구를 사귀지는 않았지만, 

청화 덕분에 중국어가 일취월장(日就月將) 했던 것 같다(물론 지금은 그 실력이 아니다). 


함께 일 년을 지낸 우리는 헤어질 때 공항에서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른다. 

무뚝뚝하던 청화도 그날은 눈물을 보였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도 이 보다 가슴이 덜 아플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이별 중에 청화와의 이별이 여전히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무뎌지게 하는 최고의 치료사다.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이어오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계정이 삭제되면서 나는 청화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대만에서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어 있겠지? 

참 많이 보고 싶다. 


청화와 함께 지낸 시간의 단점이라면 단점이 딱 하나 있다. 

내가 중국어를 쓰면 ‘남방(南方) 사람’ 이냐고 많이들 물었다. 

권설음(捲舌音)이 불분명한 남방 발음의 특성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것 빼고는 다 좋았다. 사실 그조차도 좋았다. 

청화는 나의 중국어뿐 아니라 타지에서의 외로움도 모두 나누어 준 친구이다. 

그 친구가 좋아하던 한국어 발음이 ‘딸기’였는데, 나는 딸기를 볼 때마다 청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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