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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Oct 17. 2021

나의 중국 유학 생활

진짜 열심히 공부했기에 후회가 없다.


중국에는 갔지만 그렇다고 중국어 실력이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들리지 않았고 같은 문장만 수십 번 반복해서 사용했을 뿐이었다. 

아는 길도 무조건 물어보았고, 택시보다는 버스를, 마트보다는 시장을 주로 이용했다. 

어떻게 하든 중국인들과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노력했다. 

학점교환제로 머무르는 반년 동안은 동기들과 함께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어를 사용할 일이 적지 않았다.

일부러 중국어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중국에는 점심시간이 꽤 길었다. 

11시 반쯤 시작해서 2시까지가 점심시간이었다. 이들은 오침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慢慢的)라고 여겼지만 지내다 보니 오후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 되고 오히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되었다.(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수업시간은 당연히 중국어밖에 쓸 수 없었다. 

금발 머리, 파란 눈, 까만 피부와 상관없이 모두 영어가 아닌 중국어를 쓰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면 교내를 돌아다니며 괜히 말을 걸었다. 

벌써 20년 전이고, 내가 공부하던 제남시(济南市)에는 외국인이 타 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중국 친구도 길에서 만나는 중국인들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고 어설프게 중국어로 말을 걸면 친절하게도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공산당 당원 부모를 둔 중국 친구와 이야기하다 대만이 '나라'라고 했다가 

장장 2시간 동안 중국과 대만 관계는 물론 중국 정치에 대해 들었던 적도 있다. 

그날 기숙사로 돌아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 후로 중국 친구들과는 대만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한국인처럼 보이는 중국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곧 영국으로 유학을 갈 준비 중이었다. 

발음도 깨끗하고 매너가 무척 좋은 친구들이라 나는 이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이 친구들이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1년 넘게 연락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까 궁금하기도 하다. 

반년이 지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나는 휴학을 하고 중국에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4개월 정도가 지나서부터 귀가 뚫리기 시작했고, 이제야 중국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좀 되려나 싶은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애쓴 보람이 없을 것 같았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중국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돌아가는 것이 훗날 부모님께도 더 좋을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 외에도 몇몇 동기들이 휴학을 하고 중국에 남기로 했지만 모두 북경, 상해, 천진 등 더 큰 도시로 떠났다.

나 역시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산동대에 남기로 결정했다. 

한국인이 적은 것도 이유였고, 

이제 적응한 이곳을 떠나 다시 새로운 곳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적응하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되기도 했다. 


또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제남에서 만난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중국으로 와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근처 산동사범대에 갔다 만나게 되었다. 

넓디넓은 중국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산동대에 있는 동안 우리는 가끔 만나 한국음식을 먹고 향수를 달래고는 했다. 


용감하게 혼자 남겠다고 했지만, 동기들이 모두 돌아가고는 전혀 새로운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산동대의 장점 중 하나가 기숙사가 1인 1실이었다는 것인데, 화장실의 유무에 따라 기숙사비가 차이가 났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아끼고자 나는 주로 국비 외국학생들이 머무는 화장실이 없는 기숙사로 옮겼다. 

이 기숙사에 한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화장실만 방 안에 없었을 뿐 방도 꽤 컸고 공용 주방과 화장실을 함께 쓰며 오히려 중국어를 사용할 기회는 더 많아졌다. 

그 사이 나의 중국어 실력이 늘어 상급반에서 공부를 했다. 

상급반도 하급반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한국인들은 중급반에 가장 많았다. 

상급반으로 가면서 작문시간도 늘어나고 말하기 수업도 토론 위주로 편성되어 어려웠지만, 

그런 스트레스조차도 기쁨이었다. 

나는 정말 중국어가 재미있고 중국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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