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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언니 Oct 17. 2021

첫 출근

해양경찰이 되었다.


사실 외국어 특채로 입사하면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인터폴(Inerpol), 국제 형사 경찰의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상상이지만, 그랬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바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해양경찰로 첫 발령받은 곳은 파출소였다. 

주 근무장소는 연안여객터미널 內 ‘검문소’였다(지금은 이 업무를 해경에서 하지 않는다). 

서해에는 섬이 많다. 

그중에서도 서해 5도(백경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군사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곳이다. 

여객선을 타고 섬 주민뿐만 아니라 군인, 관광객까지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출입항을 한다. 

내 임무는 임검을 통해 거동수상자나 지명수배자 등을 가려내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로 했던 일은 할머니 할아버지 무거운 짐 들어 드리기, 분실물 찾아 주기, 민원인 불편사항 들어주기 등이었다. 물론 지명수배자를 꽤 많이 단속하기도 했다. 


늘 첫 출항하는 선박은 인천항을 출발해 백령도로 향하는 여객선이었다. 

백령도는 쾌속선을 타도 4시간 정도가 걸려 도착하는 꽤 먼 거리였고, 

하루에 한 번 밖에 다니지 않아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다른 여객선은 출항 20분 전부터 임검을 시작했지만 백령도는 늘 40분 전에 임검을 시작해야 정시에 배가 출발할 수 있었다. 

첫 출항시간 새벽 6시 40분, 임검은 6시에 시작하니 적어도 나는 5시 40분에는 출근해야 했다. 

그날의 바다 기상과 여객터미널 동향 등을 경찰서 교통계에 보내 놓고 옷을 갈아입으면 임검 준비가 된 것이다. 

주로 오전에 출항 선박이 많았기에 정신없이 임검을 하고 자리에 앉는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서다. 

그제야 나는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지를 적을 수 있었다. 


출근시간이 새벽이었기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되면 잠이 쏟아졌고 보통은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 당시에는 내차가 없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출근할 수 있었지만, 차 사는 것을 되도록 미루었다.

돈도 없었고 그때 파출소장님이 되도록 차를 사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기 때문이다. 

차는 소모품이고 한번 사면 돈 들어갈 일만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맞는 말이었지만 8개월을 버티다 결국 사버렸다. 

첫 발령지에서 첫 차를 샀고 그곳에서 약 10개월을 근무하고 발령이 났다. 

소장님 말씀을 끝까지 들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중국어 특채로 입직(入職)했지만 중국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중국어를 쓸 일은 중국인 관광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를 빼고는 없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 꽤 잘 적응하는 편이다. 

불만스러운 환경일지라도 곧 수긍하고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불평한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상황 속에 있는 내가 변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다. 


검문소에 근무하는 10개월 동안 몸이 무척 힘들었다. 

나는 천성이 잠이 많은 사람인데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니 첫 한 두 달은 정말 피곤했다. 

친구들과 약속은커녕 퇴근하면 일찍 밥을 먹고 자기 바빴다. 

주말은 더 바빴다. 출입항하는 여객선 수가 평일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용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 짐을 의미한다. 


검문소에는 나와 경사 선배 한 분이 근무했다. 

검문 소장이 휴무 때 파출소에서 돌아가며 지원근무를 나올 때 빼고는 파출소 직원과도 만날 일이 크게 없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운항관리실 직원, 선사 직원, 인방사, 기무사, 해병대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휴무일도 그들과 만나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했다. 

나는 그때까지 평일에 쉬는 사람들은 다 백수인 줄 알았다.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송이’ 경찰이었는지 지금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첫 발령지라서 그럴까? 

지금도 여객선터미널에 갈 때면 검문소 사무실이었던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게 된다. 

비록 내가 상상하던 경찰생활은 아니었지만 대민봉사가 무엇인지 배웠고, 

직장생활의 애환을 일부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참 쉽지 않은 길이 되겠구나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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