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새영 Nov 14. 2019

패션회사니까 일이 너무 재밌지 않아?

패션회사 MD가 들려주는 옷에 대한 이야기


 당신은 한벌의 옷이
어떻게 시장에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내가 패션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고 단순히 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대학시절 전공이던 경영학 외에 의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던 순간, 패션이라는 업이 내 인생의 업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단순히 옷 입는 걸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이 운 좋게 패션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고, 정직원 전환면접까지 합격하게 될 확률은 감히 로또와 비할만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지금과도 같은 청년실업률 최고점 시대에는 말이다. -어떻게 합격했냐고 묻는다면, 난 지금도 99% 운이 좋았다고 단언한다-


 그렇게 패션업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지도 어느덧 6년. 하루라도 같은 옷을 입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20대의 꽃다운 대학생은 온데간데없고, 늦은 밤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회색빛 얼굴의 롱 패딩만이 살아남아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스컴을 통해 다뤄지는 패션회사를 보고 막연하게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고난이 있지만 PT(Presentation)에서 살아남아 인정받고 멋진 브랜드를 론칭, 결국에는 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던 본부장과 운명적인 사랑에 골인하는 주인공 같은 내 모습을.


 물론 입사 1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난 빠르게 깨달았다. 약간의 고난 따윈 없고, 쓰러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진 풍파가 몰아닥친다. 나를 보호해주는 롤모델로써의 훌륭한 선배는 없고, 일관된 주관으로 브랜드를 단단히 이끌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론칭 2년 내에 스크랩(scrap)된다. 그리고 대개 부장 이상은 배 나오고 회식 자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환상은 처참히 깨졌다.

 환상이 더 깨지기 전에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느 패션학도 학생들을 위해 과연 그놈의 옷이란 게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머리를 싸매게 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100% 현실 기반이며, 일말의 거짓이나 미화는 없다.



대개 일반적인 브랜드 기준으로
평균 해당 시즌 1년 전부터
기획이 시작된다



 다음 해 추동(20FW) 옷이면 올해 19년 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물론 SPA나 일부 브랜드들은 월별, 심지어는 주별 기획으로 GTM(go to market, 상품이 기획되고 출시되는 전 과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시즌 기획을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장 및 소비자, 유통 등 거시적인 관점 전반의 트렌드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도 걸리는 중요 작업으로, 담당 MD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낼 수가 없는 일이기에 보통은 외부 리서치나 사내 기획자료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1년 후를 위해 미리 해놓은 준비들이 모두 백지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정확한 예측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게 거시적인 시장의 분석이 끝나면 조금 더 미시적인 부분의 트렌드 조사로 옮겨오게 된다. 셔츠, 팬츠 등의 세부적인 품목으로 나누고 그 품목 내의 트렌드를 조사한다. 가령 선진 브랜드들의 오뜨꾸뛰르(고급 맞춤복, 패션쇼 착장)나 레디투웨어(RTW:ready to wear, 기성복)는 물론이고 경쟁 브랜드에서 최근 출시되는 상품, 혹은 호조 상품들의 조사도 이때 이루어진다.

 거시, 미시적인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시즌 전반을 아우르는 플랜을 작성한다. 그 내용에는 어떤 타겟층에게, 어떤 소재로 어떤 핏감의 상품이 언제, 얼마에 출시되는지 상세하게 내용을 기재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본격적으로 한 시즌이 시작될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많은 주변의 간섭과 방해가 발생한다. 그리고 항상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고. 이 문제는 한 단락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음 기회에 좀 더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그래도 패션회사니까 재미있지 않냐는 질문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일은 다 재미없다



 패션회사에 다닌다고 했을 때 좋은 점은 명쾌하다. 주변의 동경 어린 시선-우와, 패션회사 다니는 사람 처음 봤어요- 혹은 샘플 등 자사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쁜 점 또한 너무 명확하다. 어딜 가든 저 사람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소재가 어떠한지, 원가는 얼마나 나올지 말없이 계산한다. 그것으로 사람을 어떻니 저떻니 판단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기획자(Merchandiser)의 학문적 호기심이다. 이런 걸 흔히들 고질적인 직업병이라고 하던가.






 어찌 보면 이제 겨우 6년 차인 필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 적어나갈 패션회사 전상서는 혹자의 눈엔 점만 과장된 것처럼, 혹은 장점만 미화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6년 하고 이러는 거야? 나 때는 말이야~'라고 고개를 저을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직급, 어느 회사, 어느 직종에나 고충은 있고, 필자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구절을 신봉한다.


 당신의 어느 날엔 슬픔을 나누고, 어느 날엔 기쁨을 공유하는 글이 되길 바라며-

패션을 꿈꾸는, 패션이 궁금한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의 글을 바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