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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새영 Jun 20. 2020

김밥을 제일 좋아하는 어른이

우리 가족, 그리고 김밥의 역사


소풍날을 맞는 초등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김밥파'와 '유부초밥파'.


 물론 요즘에야 손재주 많으신 부모님이 제 실력을 발휘한 아기자기한 도시락-가령 카레물에 목욕하는 곰돌이나 귀여운 눈이 달린 문어 소시지와 같은 흔한 듯 흔하지 않은 메뉴들을 만들어 내곤 하지만, 적어도 90년생인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그랬다. 소풍날 도시락은 무조건 김밥 아니면 유부초밥 둘 중 하나였고, 그중 난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단연코 '김밥파'였다.

 당시 김밥파는 흔치 않았다. 일단 초등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어린 입맛에는 달달하고 새콤한 유부초밥의 맛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물론 요리하는 부모님 입장에서도 참 간편했겠다 싶다. 유부초밥 키트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이 열광하는 새콤달콤한 유부초밥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뿐더러, 거기에 소시지나 당근 같은 가 재료를 밥에 살짝 첨가해 주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인정받는다! -내가 부모님이었어도 유부초밥이 백번은 더 편했겠다 싶다.


 때문에, 간혹 바쁘신 부모님으로 인해 김밥 전문점에서 사 와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김밥을 정말 좋아해서 싸오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유부초밥은 김밥이 가지지 못한- 아이들의 입맛에 더해 만드는 이의 편의성까지 두 가지 장점이 모두 충족되기 때문이었겠지.


김밥파 또 있으신가요?


 하지만 나는 늘 김밥을 먹었다. 어린날 엄마가 '소풍날 뭐 먹을래?' 하면 무조건 '김밥!'을 외쳤더랬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 린 입맛에도 친구들이 싸온 새콤달콤한 유부초밥은 참 자극적이고 맛있었지만, 그래도 난 엄마가 투박하고 정성스레 싸주는 우리 집 김밥이 제일 좋았다.


 소풍날 아침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함께 잠을 깨곤 했다. 오래된 김발을 펴고 바삭한 김을 깔아준 후, 그 위에 참기름 넘실넘실 겨 나 고슬고슬한 밥을 올린다. 그리곤 맛살, 햄, 시금치, 단무지, 오이와 같은 가지각색의 다채로운 재료들을 넣고 말아 주면 김밥은 금세 뚝딱 완성. 어린 내가 씻고 나올 즈음엔 항상 우리 가족 다섯 명을 위한 김밥들이 엄마 앞에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음식인 줄 알았더랬다. 그래서 소풍날이 아닌 평소에도 자주 김밥을 해달라고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그럼 엄마는 언제나 다렸다는 듯 김밥을 뚝딱 만들어 주다.


 좀 더 자라 나선, 엄마가 냉장고에 김밥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넣어두는 걸 알게 됐다. 잘 상하는 시금치나 오이와 같은 재료를 제외하고, 계란이나 햄, 맛살 등 다른 김밥 속재료들은 김밥의 길이에 맞게 가지런히 다듬어지거나 조리되어, 냉장실 한켠 밀폐용기에 들어있었다. 틈만 나면 김밥을 해달라고 조르는 자식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집에 김밥 재료가 늘 손질되어 냉장고에 들어있진 않고,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평소에 해 먹기에는 참 귀찮다는 사실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어떤 날엔 김밥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그런 날이면 나와 동생들은 엄마에게 '김치김밥'을 주문한다. 그럼 엄마는 냉장고에서 푹 익은 김치를 꺼내 식탁 위에 두며 '아이고, 김밥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하셨다.


 우리 집 김치김밥에 필요한 재료는 간단하다. 한입 크기로 잘린 조미김과 따뜻한 흰쌀밥, 그리고 푹익은 김치만 있으면 된다. 한 손에 폭 들어오게 잘린 조미김 위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쌀밥을 한 숟갈 놓고, 그 속에 잘게 썬 김치만 넣고 말면 완성이다.


 간단하지만 하나하나 싸야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이 김치김밥을 엄마는 항상 자식 셋이 원하는 만큼 잔뜩 말아주시곤 했다. 나와 동생들은 엄마가 김밥을 싸는 족족 집어먹고, 결국 그 작은 김밥이 탑처럼 높이 쌓일 때쯤이면 나와 동생들은 '이제 안 먹을래'하며 TV 앞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남은 김밥들을 엄마는 몇 개 집어서 드시는 게 다였다.


 하루는 김밥을 싸는 엄마 옆에 앉아 '엄마 안 뜨거워?' 하면 '이게 뭐가 뜨겁노, 하나도 안 뜨겁지'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분명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밥이었지만 늘 괜찮다 했다. 엄마 몰래 슬쩍 집어본 밥알이 어린 내 손에는 몹시 뜨거웠다.





 그렇게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점차 커가며 나는 집밥보다는 외식을 선호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집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침은 시간이 없어 건너뛰기 일쑤였으며, 점심부터 저녁까지 모두 학교에서 급식을 먹어야만 했다. 게다가 당시 우리 학교의 야자 (야간자율학습)는 저녁 11시가 어서야 끝났고, 주말에도 교내 정독실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이  시절 나의 모든 일과였다.


  지겨운 고교생활의 하루 속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야자가 끝난 저녁 11시였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집에 돌아가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문을 벗어나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면, 부모님이 그 길 끝에 서 계셨다. 다 늦은 밤에 혼자 어두운 길을 걸어오는 딸이 걱정되어서 인지, 우리 부모님은 도 빠짐없이 나를 데리러 오시곤 했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 손에는 항상 수제 삼각김밥 두 개 따뜻한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우리 엄마 표 수제 삼각김밥은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보다 훨씬 컸다. 게다가 그 속에는 매콤한 멸치 양념 소고기 같은 영양가 많은 반찬들이 잘게 다져져 들어있었다. 중 나오기 직전에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손에 주어지는 삼각김밥은 항상 따뜻했다.

 그렇게 으로 걸어가는 20분 동안 친구들이 어떻니, 담임이 어떻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나는 삼각김밥을 먹었다.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이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그렇게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닌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곁을 떠나,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산지도 이제 어연 7년. 김밥을 참 좋아하던 어린 소녀는 누가 봐도 '시집갈 나이 다됐네!' 할 정도로 많이 컸다. 물론 몸만 컸지 아직도 애다. 다 큰 애는 지금도 가끔 김밥이 먹고 싶어, 집 근처 김밥 전문점에 가서 김밥을 주문하곤 한다. 우리 집 근처의 김밥집은 기본 김밥 대신 색다른 재료를 넣은 페셜 김밥들 파는데, 랍스터며 돈가스며 맛있는 재료들 가득 들어있는 김밥인데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항상 몇 개를 남기게 된다. 분명히 더 맛있는데, 맛있지가 않아서 이상했다.


 얼마 전엔 파는 김밥 대신 집에서 싼 김밥이 너무나도 먹고 싶어, 드디어 미뤄왔던 김밥 재료들을 사 왔다. 요즘에는 김밥 키트라고 해서, 김부터 시작해 햄이나 맛살, 우엉, 단무지 등의 김밥 재료들이 한 곳에 다 들어있는 키트를 팔더라. 김밥 키트 하나에 오이 한 개, 계란 한 줄을 더해 구매해 왔다. 요리에는 영 소질도, 흥미도 없는 내가 김밥에 도전할 생각을 하다니- 엄마가 알면 깜짝 놀랄 노릇다.


 밥에 서툴게 간을 하고, 먼저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김밥 햄을 굽고, 계란은 지단을 만드는 것처럼 약한 불에 도톰하게 구워 김밥 길이에 맞게 자르는데, 요리가 서툴어 그런지  준비에만  한 시간이 걸렸다. 물론 미리 손질된 단무지나 우엉이 없었더라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을 것이다. 김밥을 싸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가지런히 정렬해 두는 시간은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 엄마는 이 지루시간을 보내왔겠구나. 하는 철없는 생각이 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된 재료를 김에 펼치고 말아서 김밥을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갓 지은 밥이 어찌나 뜨겁게 느껴지던지, 손  낸다고 맨손으로 하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중간부터는 찬물을 떠 와서 손을 식히면서 했다. 다 만들어진 김밥들을 자르는 도중에도 일부는 속 재료가 터져서 나오는 사태 발생했지만,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똑같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먹기 전에 마가 했던 것처럼 완성된 김밥 위에 숟가락으로 쓱쓱 참기름을 발라 주, 간이 약간 슴슴한 것이 딱 우리 집에서 먹는 김밥비슷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통화하며 김밥을 만들어 먹었단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라신다. 문자로 김밥 사진을 보내니 네가 만든 거 맞냐며 의심하다가, 사진을 확대해서 보셨는지 시금치도 좀 넣으면 좋지 다. 참고로 시금치는 먼저 소 손질을 하고 그것을 데치고 난 뒤, 간까지 해야 하는  단계의 고급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내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레벨은 아니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볼까 마음이 드는 건 엄마표 김밥의 맛을 나도 똑같이 재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겠지.


 '집밥'이라고 떠올렸을 때 보통 다양한 음식들이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밥'인 것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나와 우리 가족들의 소중한 기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따금 나도 내 자식들에게 그런 맛있는 김밥과 생각만 해도 가슴 따뜻한 몽글몽글한 기억들을 심어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금세 고개를 젓는다. 충분히 못되고 이기적이라 누군가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뜨거운 밥에 손이 데는지 모르고, 소풍날이 아닌 날에도 제 자식을 위해 냉장고에 늘 김밥 재료를 손질해두는 것 같은 사랑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엄마표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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