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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새영 Jun 14. 2020

노잼 시기 극복하기

코로나가 나에게 준 회사생활 노잼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패션업계를 꿈꾸는 미래의 후배님들을 위한 센스 있는 글들을 쓰겠어!'라는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글을 끄적인 것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 근래엔 회사에 대한 글쓰기를 피해왔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산업이 그러하듯, 필자가 속한 패션 업계 역시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았다. 회사를 다닌 이후로 처음 보는 수준의 매출 역신장률은 볼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고, (이렇게 까지 마이너스 수치가 나올 수 있다니) 어떠한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쏟아부어도 통하지 않는 대혼란의 시국이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전염병이 문제의 중심이니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을 것이.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 MD와 디자이너들이 성심성의껏 기획해 내보낸 이번 시즌 상품들은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그 명을 달리하고 있다. 나름 자신 있게 내놓은 내 자식 같은 상품들은 제 값으론 판매가 되지 않아 진즉에 할인 판매에 들어갔다. 물론 할인해도 안 팔리는 상품들이 허다한 건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도 기획의 수레바퀴는 돌아가야 하기에, 다음 시즌을 위한 SS 상품들의 판매 (호)부진 사유를 찾아야 하는데, 뭔 놈의 사유가 전부 코로나다. 코로나로 인한 고객 유입이 적어 판매 저조, 코로나로 인한 매장 폐쇄, 여행업계 마비로 인한 외국인 매출 부진 등...  너무나도 허무하고 처참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시장에 나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라져야만 하다니. 더욱 나를 서글프게 만드는 것은 이 상황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하다못해 나 같은 말단 직원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회사의 주축인 경영진들에게더욱 고뇌가 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사태 이후 팀장부터 시작해서 임원진들의 비상회의가 자주 소집됐다. 회의에 참석하고 나오는 팀장님은 유독 담배를 피우러 가시는 횟수가 늘었고, 가끔은 혼잣말로 욕을 하시는 경우도 몇 번 봤다. 회의 이후로 급박하게 시행해야 할 이런저런 전술은 나오는데, 코로나 전후 상황을 아우르는 제일 중요한 목표인 전략은 어느 누구의 머릿속에 있는 건지 나와 같은 말단 직원은 알 길이 없다.


지난 네다섯 달 동안 이렇게 수많은 좌절과 허무함을 겪게 되고, 언제부터인지 일이 재미가 없고 마냥 공허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 상황을 슬럼프라고 말하기엔 뭔가 너무 고상한 표현인 것 같고, 딱 내 기분에 부합하는 단어를 찾았다.


 지금 나는 '노잼' 시기를 겪고 있다.




 하루는 퇴근길에 우연히 선임 디자이너와 만나 같은 지하철을 탔다. 답답한 마스크를 낀 채로, 회사 이야기, 사생활 이야기 등을 이것저것 하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저 요즘 너무 지친 거 같아요. 전부 노잼이에요."하고 말해버렸다. 머릿속에 온통 하루 종일 노잼 생각뿐이니 자연스럽게 말이 나올 수밖에. 절대 위로 따위를 받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고, 그저 나보다 오래 견뎌온 그녀가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지 궁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 말에 대한 디자이너의 반응이었다.


 "정말? 난 네가 항상 기운 넘쳐서, 널 보면서 나도 기운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몰랐어!"


 세상에나 맙소사. 난 이렇게까지 기운이 없는데도 티가 잘 안 난단 말이야? 한편으론 허무하고, 한편으론 내 우울한 기분을 괜히 그녀에게 토스해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디자이너를 보며, 마스크 덕분에 어색한 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스크 밖으로 '나 괜찮아요'하는 눈빛을 보내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내 스스로의 우울한 기분은 말을 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함부로 쉽게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잼 시기 극복하기>
ROUND 1. 일단 남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으니 웬만하면 입 다물자.


 얼마 전 매장 외근을 나갔다가 시간이 늦어져, 함께 나간 K, D 차장님과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두 분 다 나보다 14살이나 많으신, 40대 중반의 가장임과 동시에 이 패션업계에서 꽤나 잔뼈가 굵으신 선배님들이기도 했다. 물론 디자이너와의 만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노잼'의 니은자도 꺼내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었다.


 K 차장님 왈, 본인의 젊은 시절은 어두컴컴한 회사에만 얽매여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시며 내 나이가 정말 부럽다고 했다. 본인들과는 다르게 30대는 어떠한 도전을 하고, 어떠한 실패를 하더라도 용서가 되는 나이라고.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D 차장님이 말했다. 30대가 어려서 부러운 나이인 건 맞지만, 도전을 할 수 있기에 부러운 나이인 건 아니라고. 본인은 40대 중반이지만, 50살이 되기 전까진 끝없이 도전할 거라고 했다. 실패는 두렵지 않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쾅하고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40살이 넘어도 열정적인 사람이 있는 한편에, 30살인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노잼'이라는 단어에 온통 휩싸여 정체되어 있는 걸까. 동시에 D 차장님은 50살이 넘더라도, 지금처럼 도전하는걸 두려워하지 않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원래 그런 분이니까. 열정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두려움이니 걱정이니 하는 것들은 내 스스로가 부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잼 시기 극복하기>
ROUND 2. 노잼이라는 명목 하에 정체되어 있는 것은,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기가 두렵고 지쳐서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것을 해야 가장 후회가 없을지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은 최악의 불경기나 낮은 소비심리와 같은 현재의 시장 환경을 바꿀 수가 없으니, 처한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책을 찾아야만 했다.


 잘 만들어진 상품들을 판매하기 위해, 기존에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전개했던 마케팅을,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유통 중심으로 판매 포커싱을 하기로 했다. 좀 더 온라인이나 모바일 친화적으로 상품 페이지를 운영할 수 있도록 유관 부서에도 협업을 요청했다. 온라인에서 초반 반응이 좋은 상품은 사이즈나 컬러를 다양화하여 스팟(spot)성으로 빠르게 반응 생산하고, 오프라인에서 반응이 저조한 상품은 온라인으로의 유통 전용화를 통해 판매 효율이 나는 유통에서 집중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저것 가리고 잴 것 없이, 최대한 많은 매출과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고민하고 생각하며- MD는 상품 기획자이자, 판매원이자, 마케터가 되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또한, 업무 외적으로도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 시작하지 못하고 미뤄왔던 자격시험들을 등록하고, 그에 필요한 교재들을 주문했다. 쓸모없는 잡생각이 많을 때는 그것보다 더 머리 아픈 공부로 밀어내는 것이 최고다. 생각이 너무 많아도 잠긴다.


<노잼 시기 극복하기>
ROUND 3.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하자.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마인드가 필요.




 지금까지 거창하게 구구절절 글을 적긴 했지만, 사실 나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노잼 시기를 극복하진 못했다. 그저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나 걱정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감정인 것처럼, 내 회사 생활의 흥미나 인생의 비전 역시 나만이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잼 시기로 인해 잠시 정체될 수는 있지만, 극복해 나가는 방법도 내 의지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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