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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새영 Oct 23. 2021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

Feat. 회사생활에서 지키지 못한 것


 며칠 전,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옆자리 과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팀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너는 니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 뭐야?"


 그러면서 본인은 반 진담, 반은 우스갯소리로 이 회사에 들어온 게 가장 후회가 된단다. 그때 붙었던 다른 회사를 갔더라면 지금쯤이면 상무가 되어있을 텐데- 하시며, 현재 회사 중역으로 잘 나가고 있는 본인 동기들 이야기를 하신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 질문에, "에이, 겨우 30 몇 년 밖에 안 살았는데 후회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상하게도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그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후회'라.

 

 질문을 곱씹어 볼수록, 짧으면 짧은 30+n 년 인생 동안 내가 무수하게 겪어온 자잘한 선택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사실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한 번도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나는 항상 그 순간에서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일지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마침내 찾아냈다.


 내가 가장 후회되는 내 인생의 순간은 작년 6월이다. -6월의 어느 날씨 좋던 오후, 어둑한 회사 내부의 쇼룸에서 우리 브랜드가 스크랩(정리) 발표가 나던 그 순간.


 그날은 내가 입사 이후 8년을 줄곧 몸 담아왔던, 사랑하는 내 브랜드를 지켜내지 못한 날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우리 브랜드는 조금씩 저물어갔다. 시장 상황과 소비 행태가 변화함에 따라 조금씩 수요가 다른 브랜드들로 이동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야심 차게 내놓았던 전략상품은 기대보다 저조했다. 백화점/쇼핑몰 등 대형 유통사에 입점하려면 그들에게 판매분에 대한 마진을 지불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유통마진 및 기타 비용들을 제하고 나면 적자였다.


 그 와중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브랜드의 매출 외형마저 크게 감소했으니, 매출과 손익- 어느 쪽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하에 우리 브랜드를 스크랩(정리)하기로 결단함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결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마설마하며 소문만 무성하던 스크랩 이야기를 그날 경영진의 발표를 통해서 처음으로 확실히 알 되었고, 나는(우리는) 분개했다.

 -'왜 우리가? 더 실적이 저조한 다른 브랜드도 많은데?'라는 억울한 심정이 끊임없이 솟아났고,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질문(을 가장한 비난)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막느라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순간 이후- 순서 없이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다. 브런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 일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의 업무와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내 선택으로만 말미암아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브랜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건 그 브랜드에 소속되어있는 모든 이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과 같았다. 기획팀, 유관부서, 그리고 생산업체 직원들. 심지어 우리 브랜드를 사랑한 매장 매니저와 판매직원, 고객들까지 모두.


 그들과 브랜드에 대한 미안함이 곧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바뀌더니, 어느 순간 내 인생의 후회로 남아버리게 된 것 같다.




 '후회'라는 한 가지 감정으로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감정들로 얽힌 순간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시장과 고객에 외면받은 브랜드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가 공과 사를 잘 구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시에는 하루 종일 브랜드에 대한 수많은 근심과 걱정들로 물들어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 또한 들었다.


 필자의 남은 인생에 또 같은 후회를 남기기 싫은 마음에, 다음 주에도 더 열심히 해야지 의지를 다져본다. (어쩔 수 없는 사의 노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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