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과 나.

by 황덕현 DkTheBlank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 흔치 않게 가까워지곤 한다. 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뚝뚝하고 말주변 없는 사람, 게다가 외동에 재미없는 개그를 늘어놓는 사람 그가 그였다. 고교 시절 자잘한 장난이 쌓여 마음에 상처나 답답함을 안고 선택한 부산에서 만난 섬 같은 사내, 그가 그. 파도가 치거나 말거나 적어도 수백 년은 그 자리에서, 갈매기가 오가거나 파도 혹은 태풍이 몰아쳐도 그저 그일 그 사람은 혁.


우리는 노래방에서 놀며 친해졌다, 허튼소리도 많이 했고. 시시껄렁한 여자친구 이야기나 새로 나온 한정판같은, 또 하고 싶은 일 그런 이야기. 그에게도 초,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이 많았지만 쉴 새 없이 떠들다 각자의 삶을 보낼 때는 흩어지는, 자석이 될지라도 진흙이 되지 않았던 우리 스타일 때문에 큰 흠 없이 근 10년을 보냈지.


대학에 들어가고서부터 함께 해 구라파도 함께, 일본도 함께, 또 휴학도 함께 했던 우리. 결국 졸업식도 그랬다. 상경 후 연락이 소원해졌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둘 다 여전히 학생, 인생을 배워가는 중.


10년 전, 지금보다 조금 더웠던 어떤 날. 국토대장정에 떨어졌다며 푸념을 하다 그를 꽤 무작정 길을 나섰지. 울산을 지나 포항, 포항을 넘어 영덕이었던가. 길이 위험하다던 구멍가게 아저씨의 말을 듣고 밤 10시가 넘어 탔던 울진행 버스. 다시 정처 없이 걸어 도착했던 그곳이 강릉.


강릉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던 이학도 둘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죽헌과 선교장. 그리고 바다, 모래 또 파도. 경포대 앞에 서서 “이게 바다인가”하고 중얼거리던 부산과 여수의 바닷가 소년. ‘이번에는 정말로 나타난’ 바다, 경포해변을 거닐며 “우리가 왜 걸었나” 생각하다 붓고 아픈 다리도 모른 채 뛰어다니다 마주한 우체국, 거기서 집에 쓴 엽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갈 택시비도 아깝다며,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열심히 번호판을 찾다 결국 잡아탄 택시. “부산에서 왔다”니 오백 원 단위에 맞게 빼준 그의 웃음.


그게 있는 도시, 강릉. 그래서 10년 만에 그 감상을 보다 왔다. 많이 발전했고 또 변했더라. “우리가 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았더라”고 말하려다 “지금은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아 많이 보려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혁아. 잘 지내지. 우린 왜 걸었고 왜 지금도 걷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