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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13. 2022

1. 들리지만 안 들립니다.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저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잘 듣지 못합니다. 한쪽에는 인공와우, 한쪽에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입모양을 보고 대화를 하기 때문에 요즘 마스크가 힘듭니다. 제가 잘 못 들어도 당황해하지 마시고 다시 불러주세요!”


 


나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늘 빠지지 않는 고정 멘트이다.





"눈이 안 보이면 사물에서 멀어지고, 귀가 안 들리면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헬렌 켈러-"




청각장애는 굉장히 외로운 장애이다. 헬렌 켈러의 저 한마디가 난청인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더 철저하게 고립되게 만든다.

 다들 외국어로 대화하며 같은 포인트에서 웃는데, 혼자서 멀뚱멀뚱 즐길 수 없는 그 느낌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매 상황이, 어디를 가도 그런 것들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들이 무섭고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한다고 믿게 되었다.



1:1의 대화에서 입모양을 보고 하는 대화는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하나, 1:다수의 상황에서는 들리지만 안 들리는 나.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하면 정상인처럼 소통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들리지만 ‘못’ 듣는 사람이다.



 

잘 듣지 못한다는 상황을 인지하면서 장애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은 치열했다.

 '잘' 못 듣지만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외부에 집중해야 했고, 제대로 듣지 못해서 느껴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상황들을 내가 주도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기 시작하고, 행동을 더 크게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와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은 내가 MBTI의 I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I 성향이 다분한 내가, 듣지 못한다는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려고 애썼던 지난 시간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장애 판정을 받은 2009년으로부터 14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했고 대부분의 아픔을 회복했다. 잘 듣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단단해져 온 내면의 힘이 ‘청각장애인이지만 괜찮아!’라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 것 같다.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수어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청각장애가 있다고 하면 다들 입 모양을 민망하게끔 크고 정확하게 하면서 천천히 말하려고 애쓴다.

 나는 질병이나 외부 사건 없이 원인불명의 난청으로 데시벨 86이 나온다.

26살에 청각장애 4급으로 진단받은 것을 시작으로 3급 재판정을 받으면서 인공와우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의 삶은 인공와우 전과 후로 나뉜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은 늘 귀에 얇은 ‘막’이 하나 더 씌워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 자라서 원래 이런 줄 알았다.

(신생아 청각검사를 진행했고, 당시에는 정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는 정상이었던 걸까?)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는 건 아주 어린 유치부때부터 어렴풋이 인지했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확신한건 고작 8살이라는 나이었다. 점점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원래 못 듣는 상황들이, 들리는 소리들만 듣고 사는 것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상처럼 여겨졌고 조금 불편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아냈다.

 내가 듣는 소리들이 세상의 모든 소리라고 의심 없이 믿었고,

나중에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하며 시끄러운 세상에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크게 불편하지 않게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갇혀서 나 홀로 살았고,

나 때문에 답답했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딱! 의문을 갖기 애매한 상태의 장애였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두가 나를 배려해 주던 학교나 가정에서처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고,

처음 부딪혀 본 평범함의 벽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는 사회생활을 겪기 시작하면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삶에 커다란 타격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눈치코치로 입 모양을 보고 배워서 말을 하는 내가

지금은 평범한 40대의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응원이 되길 바라본다.

 



청각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혹은 어디서 혼자 마음앓이를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인공와우가 도대체 뭔데? 하시는 분들에게

나의 지나온 이야기들이 마음 어딘가에 닿길 바라면서

지금은 청각장애인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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