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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13. 2022

2. 가는 귀가 먹었어!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7살의 나는 항상 두리번두리번거리는 아이였다.


혹시나 내가 놓치는 소리가 있을까, 할머니가 나를 부르시는 건 아닐까,


미묘한 분위기를 캐치하기 위해 언제나 내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내가 잘 듣지 못하는구나', '남들과 조금 다르구나' 하고 느낀 내 최초의 기억은 7살 때부터 시작된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시골에 맡겨진 나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가는 귀가 먹었어!” 하는 호통에 매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매일 내 옆에 붙어 있던 껌딱지 여동생이 “언니, 할머니가 불러~” 하고

전달해 줘야 부름을 인지할 수 있었던 나는 가는 귀가 먹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내가 잘 듣지 못 하나 봐’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당시 할머니네 집 위쪽에는 수어로 소통하시는 농아인이 살고 계셨다.


 (농아인(聾啞人)은 청각장애 등으로 인하여 말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통칭하는 말로, 넓은 의미에서 잘 듣지 못하는 경우(청각장애인)와 언어 구사가 불가능하거나 힘든 경우(언어장애인)를 통틀어 의미)


 그분은 항상 ‘손’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였는데 그때는 수화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손’으로 소통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했던 건 가끔 시골집에 내려오는 작은 아빠가 (당시에는 꼬마 삼촌이었다.)

그분을 만나면 서로 분주한 손짓으로 어떤 ‘의사소통’을 하는 거였다.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수어가 내 기억 속에 남아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수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아주 어린 마음에 손으로 저렇게 이야기하면 눈으로 보고 대답해도 되니깐 훨씬 더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말을 하지 못하시는 그분도 '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잘 듣고 잘 말하는 우리 작은 아빠도 '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이상한 게 아니라, 그저 신기한 하나의 소통 방법으로 보였다.



시골 동네엔 정말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이 계셨으니, 어른들 눈에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단지 가끔 못 알아들을 때마다 속이 터지는 답답함에 “저게 가는 귀가 먹었나!!!!!!”를 외쳐대셨지만 ^^



나는 가까이에서 하는 의사소통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가까이의 기준은 하나의 공간 정도.

일반적인 방의 크기를 벗어난 거리에서는 불러도 못 듣고, 혹여나 부르는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분별이 힘들었다. 가까운 거리여도 그 사이에 간이벽 같은 것이 있어도 소통이 힘들었다. 즉, 얼마나 가까운가 보다는 입모양이 보이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시골에서 자란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농사일에 일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추밭에서 고추라도 따고 있으면 고추밭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부르려고 어린 동생이 달려오길 여러 번, 고추를 따면서도 나는 고개를 들고 여기저기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손녀딸이 아예 못 듣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니 농사일로 바쁘신 친 조부모들은 그저 나를 답답해만 하셨다. 친조부 모의 답답함이 커질수록 나의 눈칫밥도 늘어났다.



40살이 되는 내가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불편하다.

30년이 지난 세월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혼이 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저 내내 불편했던 감정만 기억이 난다.  혼자서 무엇을 할 때도, 한 공간에 누군가와 같이 있게 되었을 때도 나는 불편했다.

그 상황이 불편했던 건지, 나 자신이 불편했던 건지 한 끗 차이의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이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맛있는 언어로 요리할 수 있는 작가였다면 너무 좋았을 것을!



"최악의 외로움은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가는귀: 작은 소리까지 듣는 귀. 또는 그런 귀의 능력 (네이버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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