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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14. 2022

3. '경'과 '정' 그리고 '통'과 '총'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내가 “경”과 “정”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잠시 떨어졌던 친정엄마와 다시 지내게 되었다.(내가 시골에 맡겨진 기간은 약 1년 반 ~ 2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문구점이라는 곳을 처음 가본 나는 아마도 무척 신이 났던 것 같다.      

“너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묻는 문구점 아저씨의 물음에 정말 씩씩하게 “김경애요!” 하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엄마가 했던 말이 아직도 당혹스럽고 난감한 감정과 함께 떠오른다.      


“얘는 왜 자꾸 자기 이름을 ‘정’이라고 해~ 경애라고 제대로 발음해야지.”    

  

지금도 나는 ‘경’과 ‘정’의 낱자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엄마의 반응을 보고 내가 “경”자 소리를 잘 못 냈구나 하고 인지를 했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경”과 “정”의 낱자 소리를 헷갈리지 않도록 혓바닥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습을 했던 게 8살 때다. 

두 소리의 차이를 인지할 수 없으니 내가 지금 내는 소리가 ‘경’으로 들리는지 ‘정’으로 들리는지 파악도 불가능했다. 나는 거거거 겨겨겨 경경 저저 정 이런 식으로 연습을 했고, 마흔 살이 다 된 지금도 “경” 소리를 할 때는 혓바닥이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모르겠어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발음하기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 갔던 문구점은, 놀이동산처럼 설레고 장난감 천국 같았던 곳이 아니라 나의 ‘들리지 않음’과 ‘남들과 다름’을 마주해야만 했던 너무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서 진공상태에 홀로 남겨진 느낌으로 떠오른다. 당시 8살이었던 내가 느꼈을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늘 생각해보고는 한다.    

  

/     


잘 듣지를 못 한다면, 말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잘 듣지 못하니 잘 발음할 수 없는 게 정해진 정답 같은 느낌이다. 아 그렇다고 모든 난청인들의 발음이 다 안 좋지는 않다. 개중에는 끊임없는 발음 교정과 훈련으로 완벽에 가까운 발음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듣고 인지하고 소리 내는 발음이 아니라 입 모양을 보고 흉내 내는 발음을 하다 보니 나는 항상 발음이 좋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혀가 짧아?’라고 물어보는 것이 결국엔 ‘나는 혀가 짧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학창 시절에 내 말투에 “뭐야?!” 하는 친구들에게 “혀가 짧아 내가ㅠㅠ”라고 어쩔 수 없는 발음임을 어필하기 바빴다. 내가 정말 혀가 짧은 건지 (육안으로 보면 설소대가 짧아 보이기도 하고...) 내 상황에 맞춰서 혀가 짧아보이게 하는 기술을 익힌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고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내 발음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길이 없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아 내가 그런가?’ 하고 인지하는 게 전부이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혀가 짧은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 그럼 이건 좋은 소식인 건가?  ^^      

대부분 내 발음의 문제는 비슷한 입 모양을 가진 낱자들의 혼동에서 온 발음 실수였다.

‘경’과 ‘정’이 그랬던 것처럼 ‘총’과 ‘통’의 발음 소리인지가 안되었다.      


나: 거기 휴지통 좀 가져와바~  


여동생: 어떤 거??       


나: 거기 있는 휴지통 좀 가져오라고..   


여동생: 아니 휴지통이 어디 있는데??   


초등학생 시절, 휴지통 좀 가져다 달라는 내 부탁에 여동생이 장난치듯 받아치는 모습에 잔뜩 열이 받았다.      

평소 속에 든 분노가 많았던 나는 ‘휴지통’을 가지고 장난치는 동생에게 분노 폭발 직전이었다. 저 휴지통을 가져다가 던져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언니의 분노 폭발이 무서웠던 동생은 딱 적당선을 지키며 휴지통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여동생: 휴지 총이 어디 있냐고.. 휴지통이지.. 

        

내가 열심히 외쳐대던 건 “거기 휴지(통) 총 좀 가져와봐~”였다.      

‘총’과 ‘통’의 입모양은......... 너무나도 똑같다.     


인공와우를 착용한 지금도 낱자 어음 분별 테스트는 여전히 고전하는 검사이다.

문장은 그나마 유추해서 알아듣겠는데 낱자는 당최 소리만 들린다(hear).      


시간이 지난 지금 동생의 추억을 빌리자면, 그 당시 동생은 발음이 좋지 않은 언니의 상태를 알고 일부러 놀리던 게 맞았다고 한다. 언니가 휴지통을 달라고 하는 걸 알았지만 자꾸만 휴지 총이라고 하는 언니가 너무 웃겨서 계속 장난을 쳤다고. 그러다가 정말 언니가 열받은 거 같아서 휴지통을 가져다준 것이라고 한다.  

    

던졌어야 해 휴지통…….


인공와우를 하고 언어치료를 하면 발음하는 방법을 배운다. 가장 어려웠던 건 ‘ㅅ’ 소리였다.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위치에 혓바닥을 대고 가볍게 바람을 내뱉으며 ‘스’ 소리를 내는데 내가 들어도 내 ‘스’와 선생님의 ‘스’는 달랐고, 들리는 그 ‘스’ 소리는 도무지 따라 발음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스’ 외에도 이미 혓바닥이 굳어진 나는 내 발음에서 정상적인(?) 발음을 하는 것이 꽤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고, 재활을 게을리한 나는 인공와우 5년 차(2022년 현재)인 지금도 발음의 정확성이 2% 부족하다. 

다만, 인공와우를 하기 전부터 나를 알았던 친구나 지인들은 내 발음이 수술 전보다 훨씬 더 또렷해지고 좋아졌다고 한다. 


인공와우를 한 사람에게 발음 재활은 끊임없는 (꽤나 귀찮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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