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관련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마음 한쪽이 화끈거리면서 콕콕 쑤시는건 어떤 의미일까? '장애'라는 글자는, 손가락에 박힌 작은 나무 가시 마냥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가끔씩 건들여지면 신경이 쓰이는 잔잔하고도 불쾌하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는 간판을 보고 버스정류장을 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2006년 9월 30일에 동갑내기 남자 사람을 소개받았다.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고 그 사람은 군 제대 후 복학을 준비 중이었다. 180cm 큰 키에 순둥순둥한 모습이 동네 친구로 지내기에 손색이 없었고, 나와는 다르게 첫 만남에 나한테 홀딱 반한 것을 모른체 나는 좋은 동네 친구가 생긴 것으로 만족하는 소개팅이었다. 몇 개월 동안 친구 코스프레 우정 흉내를 내던 우리는 그 사람의 깜짝 고백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동시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듣지 못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로 힘들어했고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함께 겪어주었다. 더불어 장애등급을 받는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지켜보고 함께 해주었다.
이 사람은 내가 못 듣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장애 판정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걱정도 두려움도 거부감도 없었다. (아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잘’ 듣지는 못 하지만 연애는 어려서부터 꾸준하게 해오고 있었다. 그러니 장애가 있어 연애도 하기 힘들었을거라고 안타깝게 보시는 분은 없으시길!) 어쩌면 무심하리 만큼 ‘청각 장애가 뭐?’ 하는 반응이었던 남자친구 덕분에 힘들 수도 있었던 청각장애 진단 사실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장애등급을 받기 전부터 남자친구는 나의 답답한 부분들을 스스로 배려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도 나의 어딘가 애매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터였다.
예를 들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가 말을 걸면 나는 하던 것을 멈추고 남자친구에게 다시 이야기 해주기를 요구했다.
“뭐라고?”
남자친구는 같은 말을 다시 하고, 나는 그의 입 모양을 보면서 대답을 하는 패턴.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물었다.
“자기는 입을 보고 이야기 해야하는 거 같아”
남자친구의 그 뉘앙스에는 어떠한 편견도 불편도 혹은 작은 의심마저도 없었다. 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온 공기에는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어떠한 무거움도 불편함도 감지되지 않았고(어쩌면 사랑에 푹 빠진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세상으로만 남자친구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자친구의 의심없는 그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는 원래 그렇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응! 나는 입을 안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입 모양을 봐야 더 잘 들려!”
상대가 어떠한 의심도 반문도 할 수 없는 너무 명쾌하고 당당한 대답이 아닌가!? 라고 하기엔 얼마나 어이없는 대답인가.. 그런 허술한 대답에도 반문없이 남자친구는 '그렇구나~' 하고 끝이였다. 그 뒤로 남자친구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자막이 있는 영화만 예매하기 시작했고, 한국판 영화들은 자막을 구해서 집에서 볼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자막을 구하지 못 하면 손수 자막을 입력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사람은 그렇게 ‘잘’ 듣지 못하는 나에게 스며들었고, 존중이 담긴 배려로 날 사랑해주었다.
그렇게 2년의 연애를 하고 부부의 연으로 14년째 함께하고 있는 신랑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을 해보았다.
나: 자기는 내가 잘 듣지 못 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어?
신랑: 글쎄? 그냥 알았던 거 같은데... 자기가 말하지 않았나?
나: 그때는 내가 청각장애 진단을 받지 않아서 말 안 했을텐데!?
‘잘’ 듣지 못하던 ‘나’라는 사람을 사랑해준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장애등급 판정을 받고 공식적으로 청각장애 등록을 해 장애인증을 받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기 전에 왜 그렇게 장애인 등록을 하려 애를 썼는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참 안쓰럽다. 결혼 준비를 하던 당시에 나는 “12화 안들렸어?” 에피소드에 적은 한국은행 정보자료팀에서 사무실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 하는 난감하고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였다. 장애인 등록만 하면 인공와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간단한 시술로 인공와우를 하면 나도 잘 듣게 될 거라는 무지에 기반한 희망으로 장애인 등록을 그저 서두를뿐이였다.
스스로가 안쓰러웠던 ‘나’와는 별개로 내가 ‘잘’ 듣지 못 한다는 것, 장애인 등록으로 공식적인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관계에 있어서 신랑이 고려해야 할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긴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안쓰럽고 불쌍하게만 보아왔다. 결혼 후에 내 장애를 핑계로 그 속에서 고립되어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지하에 가두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우자의 존중과 배려 덕분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너무 나를 정상인 취급해서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대신 말하게 하고, 대신 통화하게 하고, 대신 건의하게 하는 신랑 덕분에 온전히 ‘나’ 자체로 인정받는 것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결혼 초에는 왜자꾸 잘 듣지 못 하는 나에게 전화주문을 시키는지 화딱지가 났었다!!!)
2009년은 내가 청각장애인으로 등록됨과 동시에 결혼을 하였고, 예쁜 첫 딸을 얻었던 의미 깊은 해가 되었다.
결혼 14년차, 매일 밤 인공와우를 빼고 자리에 누우면 신랑이 와서 말을 건다. (내가 인공와우를 빼는 자리는 거실 식탁이다. 한 번 빼면 다시 착용하러 나가기가 꽤나 귀찮은 거리이다.)
입 모양을 보고 알아차리지 못 하면 혼자 재미있어 쓰러진다.
인공와우 착용 후 입 모양을 읽어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신랑이 하는 말을 내 나름대로 읽어서 헛소리를 하면 맞출때까지 계속 나를 건든다.
“그냥 핸드폰으로 써주면 안돼?”
“응 안돼^^ 맞춰봐~”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그냥 나 와우 빼기 전에 말해주면 안돼?
우리가 결혼한 건, 이 사람이 착해서였을까?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를 사랑했고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맞닿아 따듯했기에 지나가는 인연으로 남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 사람의 배려는 불편하지 않았고, 내가 자신의 삶에서 복덩이라고 말해주는 이 사람이 감사하다.
우리가 가정을 꾸려나가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함에 있어서 나의 장애는 분명 불편한 부분이 있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고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또한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