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족들과 과메기를 먹었다. 호불호라는 이 과메기에 뒤늦게 빠져서 찬바람이 불면 하루가 멀다 하고 먹어대고 있다. 이러다 과메기 씨를 말릴까 염려스러울 정도다.
과메기를 먹기 위해 필요한 부재료는 간단하다.
단 맛이 나는 알배추, 한국인의 소울 마늘, 느끼함을 잡아주는 청양고추, 그리고 포인트 고소한 참기름! 이 조합이면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주말에 먹었던 과메기도 변함없는 맛으로 나에게 감동을 선사해 줬다.
먹을 때마다 변함없는 맛은 나를 단골로 만들었고, 단골이란 건 흡사 언제나 찾아갈 내 집이 있다는 느낌과 비슷하다. 먹을 때마다 맛이 다르면 주문할 때마다 여기저기 리뷰를 보며 고민하고 선택하기까지 꽤나 귀찮은 과정들을 반복해야 하니.
내 집과 같은 익숙하고도 반가운 과메기를 맛있게 먹고 나서 탈이 났다.
아뿔싸!
같이 먹었던 가족들이 고열에 구토 그리고 설사를 동반했다. 분명 상태는 안 좋은데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라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 후 좀 회복되는가 싶더니 윗 배가 너무 아프다. 마치 아주 매운 음식을 뱃속에 발라놓은 것처럼, 어쩌면 화~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도 한 아픔이다. 강약 조절하며 오는 아픔이 ‘강’에 도달할 때는 숨도 쉬기가 힘들고 허리도 펴기가 힘든 것이 진료를 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방학기간이라 엄마 따라 출근한 11살 막내를 데리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잘 못 들으니깐 디아가 잘 들어줘야 해. 네가 엄마 보호자야 알겠지?”
인공와우 6년 차이지만, 아직도 입모양을 봐야 잘 들리고 마스크 착용 상태로 하는 대화는 놓치는 게 많은 청각장애인이다. 특히나 소음이 많아 인공와우로 들어오는 소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내 옆에서 접수하고 수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콜라보되어 들리니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늘 긴장되는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병원이다.
엄마랑 있을 때는 깨발랄이지만, 우리 집에서 낯가림이 제일 심한 막내라서 여태껏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매번 언니들과 함께해 엄마의 보호자는 언니들이었으니 순간적으로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아기처럼 징징거리고 누가 봐도 막내구나!’ 싶은 11살 딸은 듬직한 보호자가 되었다.
“엄마 가방 주세요.”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 묵직한 내 가방을 손수 들어주고,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순간에도 혹시나 번호를 놓칠까 계속 번호판을 확인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접수를 시작했다. 나만큼이나 데스크에 얼굴을 바짝 붙인 막내가 큰 소리로 전달해 준다.
“엄마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그 정도는 나도 다 들었지만, 보호자라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주었다.
엄마의 롱패딩과 묵직한 가방을 굳이 본인이 들고 진료실을 비장하게 따라 들어온다.
채혈을 하는 동안에도 굳이 내 옆에 가방을 들고 서 있고, CT를 찍으러 들어갔을 때는 엄마의 상태를 가족들에게 손수 알려주는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었다.
간호사가 안내해 주는 이야기들을 혹여나 엄마가 못 들었을까 봐 다시 한 번씩 되짚어 주는데, 잘 전달해 주는 거 보니 이제는 내 보호자로 데리고 다녀도 되겠다는 기특함을 느꼈다.
인공와우를 하기 전, 작은 소리도 듣기 힘들 때는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보호자 역할을 부탁하는 것이 미안했고 속상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너희 이름 부르는지 아닌지 잘 들어야 해. 엄마는 잘 못 들으니깐. 알겠지?”
보호자 역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병원에 가면 자기 이름을 부르는지 아닌지 계속 신경 써야 하고 진료를 받으면 의사 선생님 물음에 본인이 대답해야 하고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잘 듣고 엄마가 들은 것과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말을 하고 인지가 될 때부터 시작해 왔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꽤 독립적인 아이들로 자랐다.
아이들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미안함과 안쓰러운 감정들이 세트처럼 느껴지곤 한다.
엄마가 청각장애인여서 답답할 때도 슬플 때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예쁜 아이들로 자라주었으니 이제는 그 감정 세트에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이 들어가 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