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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Feb 13. 2023

13. 모르셨어요? 청각장애입니다.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직장에서의 전화 사건이 있은 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안 들릴 때’

‘전화 울리는 거 볼 수 있는 방법’    


 

잘 듣지 못 하는 상황들에서 나는 기가 많이 죽어 있었는데 전화 사건은 나에게 현실적인 타격감을 주었다. 꽤 어린 시절부터 ‘잘’ 들리지 않는 상태로 자라왔지만 돈을 버는 사회생활에서 잘 듣지 못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책임 질 수 없다는 것과 똑같았다.

      

전화벨이 안 들린다는 키워드는 청각 장애를 걸쳐 인공와우라는 키워드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병원이라는 곳을 가볼 생각을 했다. 


나의 지난했던 시간들을 읽는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아니 상황이 이런데 도대체 왜 병원을 가지 않는거지?’   


  

나는 여전히 못 듣고 자존감이 가루가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하면서 들을 수 있음에 집중했다. 그저 조금 못 들을 뿐이라고, 전화도 받을 수 있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남들과 다른 부분에 대한 인정을 두려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공와우라는 간단한 수술을 하면 이 모든 상황들에서 벗어나 잘 들을 수도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엔 인공와우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보청기처럼 잘 듣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작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요.”

“청력검사 해보신적 있으세요?”

“아니요”     



25살에 처음으로 이비인후과에서 제대로 된 청력검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셨어요? 청각장애입니다.”

“일상생활이 꽤 힘드셨을텐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 정도 수치면 바로 장애인 등록이 가능합니다.”  

   

이미 나는 양쪽 귀 모두 80데시벨 이상, 고주파 영역은 죽어있고, 분별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청력 검사를 할 때 문장과 단어 그리고 낱자 단어를 따라 말하는 검사를 한다. 문장과 단어는 어렴풋이 느낌으로 때려 맞추는게 가능했는데 낱자는 거의 전멸이었다.)  


   



진료를 보고 나온 나의 귀는 이명으로 가득 찼고, 담당 선생님이 하는 말들은 윙윙 거리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수납을 하고 나오는 나의 얼굴에는 충격이 가득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직원분들의 표정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병원을 나서는 내 뒷통수에 느껴지던 그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지레짐작은 했지만 정말로 전문의한테 장애입니다. 라는 사실 확인을 받는 것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오는 내내 귓속의 이명은 사라지지 않았고, 웅웅 거리는 세상의 소음들은 장애가 없는 그들의 것으로 느껴지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받은 충격은 깊이는 깊었지만 그 충격의 파동은 걱정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정말 장애인이라는 진단을 받을까봐 두렵고 외면하던 때가 지속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충격 속에서 안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라는 진단을 직접 받고 며칠은 꽤 나 울었었다. 가족들에게 “내가 청각장애인이래.” 이야기를 하며 울었고, 남자친구에게 “내가 청각장애인이래.” 사실을 전달하며 울었다.     


그리고 곧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단계가 시작되었다. 그 받아들이는 과정은 나름 무던하게 흘러 갔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움츠러들기엔,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도 안쓰러웠다. 그래서 뻔뻔해지기를 선택했다. 아니, 뻔뻔해질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잖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식의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내가 못 듣는것에 대해서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된다는 어떠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왜 나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늘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답을 찾고싶어 애쓰던 흔들리는 내 마음들이, 청각장애라는 사실확인으로 항구에 정착한 배처럼 조금은 흔들림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가끔씩 문득문득, 내 마음은 힘들고 흔들리고 바닥으로 떨어지길 반복한다.       


7살부터 두리번 거리며 '가는 귀가 먹었어!'라는 호통을 들었던 나는 25살이 되어서야 정확한 청력검사를 하고 장애인 수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정확히는 반년 동안) 내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고 26살에 사회적으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왜 지금까지 부모님은 나를 병원에 한 번을 데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이제야 든다. 그렇다고 그런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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