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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Jan 30. 2023

12. 안 들렸어?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3개월 남짓한 첫 직장생활을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경험은 어떤 선택에 있어서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나를 불러도 듣지 못하는 일,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나만 듣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듣는 다그침, 남들은 알고 나만 몰랐던 나의 출장은 다시 또 경험할까 두렵기만 했다. 


따듯한 봄에 시작한 들리지 않는 지옥의 직장생활은 여름이 되어 끝났다. 

잠시 숨을 고르고 선택한 두 번째 직장은 한 고등학교의 3개월 사서직 대체 자리였다. 


두 번째 직장 역시 수월할 리가 없었다. 



도서관 카운터 뒤로 작은 사무실이 있었고 그 사무실에는 사서인 나와 도서관 담당교사인 국어과 선생님이 함께 근무를 하게 되어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수업시간에는 수업이 없는 교사들의 대출업무를 봐야 하기에 늘 사무실 밖의 카운터에 앉아있는 나는, 사무실에서 담당교사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나와 담당 교사 사이에는 사무실 벽이 하나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2M도 채 되지 않았다. 


“김 선생님~ 안 들려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는 담당교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 자존감은 가루가 될 정도로 구겨지고 구겨졌다.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사방으로 집중하고 (그럼에도 나에게는 들리는 소리가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 나를 부를 때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체크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을 한 나는 퇴근 시간만 되면 녹초가 되었다.      


도서유통업체와 계약직 학교 사서로서의 근무. 


각 3개월씩 총 6개월의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아니라, 내가 과연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렸다. 듣지 못한다는 것은 웃어넘길 수도 없었고 ‘못 들을 수도 있지~!!’라고 도리어 뻔뻔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잘 들리지 않아서) 힘들어”     


나의 힘들다는 말에는 이유가 빠져있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직장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로 이해했다. 



'내가 노력해도 잘 들을 수 없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훨씬 전부터 했었어야 하는 고민을 나는 이제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나이가 24살이었다.   

   

근본적인 문제 ‘청각’에 대해서는 원인을 찾아보려도 정확한 상태를 체크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익숙해지니 문제라는 것을 잊은 것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3개월씩 두 번의 직장생활을 겪은 후, 일이라는 것이 무서웠다. 어떻게든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보이기식 공부였다.     

‘공부를 해보자! 사서 공무원을 준비해 봐야겠어’ 


잠깐 일하며 모았던 적은 돈으로 공무원 교재들을 사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라고 적고 싶었지만 나는 공부와 함께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던 남자친구랑 매일매일 놀기에 바빴고, 남들 목숨 걸고 하는 공부와 시간을 나는 남자친구에게 집중했다. 


지옥 같은 직장생활을 경험하고도 간절함이 없었던 나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어영부영 백수생활을 하며 공부 흉내만 내다가 공무원 시험을 보고 온 날, 바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한국은행 정보자료팀에 취업할 수 있었다. 정보자료팀에는 나를 포함한 8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계약직으로 각종 자잘한 업무를 수행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팀 회의가 있었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나는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당겨 받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내 자리에 있는 전화가 울릴 때는 불빛이 깜빡이면서 전화가 오는 걸 알 수 있는데 다른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들은 나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회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고 개인 전화를 받는 척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화벨 소리를 나만 못 듣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 전화가 온다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화벨이 울리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 중이신 선생님이 갑자기 내 쪽으로 오시더니, 건너편에 있는 전화를 들었다. 선생님이 걸어오시는 동안에도, 나는 벨이 울린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 대신 전화를 당겨 받으신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안 들렸어?”    

 

그 뒤로 나는 회의 시간에 사무실 전화를 받는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모두가 있는 공간에 혼자가 되는 느낌, 배제가 되는 것, 나의 듣지 못함으로 인해 답답하고 난해한 공기의 흐름이 발생할 때마다 내 얼굴에는 무안과 당황스러움이 공존하였고, 애매한 웃음 속에 그 감정들을 숨기고자 애써 노력했다.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한 공간에 있지만 나만의 에어포켓에 격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투명한 에어포켓 속에 갇힌 나는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데 웅성웅성 그 말들이 내 귀에는 전달이 안 된다. 에어포켓에 있는 나의 시간과 공기만 다른 흐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에어포켓에 멍~ 하니 갇혀있다 누군가가 에어포켓 속으로 손을 넣어 “못 들었어?!” 하고 흔들면 에어포켓 속의 공기들도 흔들린다. 


한번 흔들린 공기는 멈추지 않는 파동으로 내 주위를 감싼다. 끝나지 않는 파동 속에서 나는 또 하루를 시작하고, 또 다른 상황들을 마주해야 했고 결코 적응할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도 삶이 행복했고 살아내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지만 죽고 싶지 않았고, 나 홀로 남겨진 듯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고, 아침에 뜨는 해는 싫었지만 어둠이 시작되는 저녁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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