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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Jan 11. 2023

11. 청각장애인의 첫 직장 경험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나의 학창시절은 청각장애인이라면 모두 가져보는 ‘사오정’이라는 별명으로 가득 찼다.


초등학교때도 사오정이였던 나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사오정이였고, 

내가 ‘잘’ 듣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내 친구들도 ‘잘’ 듣지 못하는 나에게 익숙해져 갔다.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지 못하면 친구가 될 수가 없었다. 친구가 되기 위한 선택권은 나보다는 상대방에게 있었다.   


  

“아 김경애 또 못 들었어~!!”

“뭔데~ 뭔데~~ 못 들었어~~”     



착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능청과 뻔뻔함은 날로 레벨업 되었다.    


  

그런 불편함을 일상으로 여기며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간 실습은 아르바이트와는 또 다른 사회생활이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나는 졸업을 앞둔 4학년 23살에 도서관으로 실습을 나갔다. 4주간 진행한 실습 생활에서 나에게 남은 건 실무내용이 아니라 좌절과 절망이라는 감정 뿐이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는 나를 작게 불러도 다 들을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조용한 곳에서 더 조용하게 부르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에 나는 좌절했고, 어쩌면 나는 앞으로 돈을 버는 모든 직업이 어려울 수도 있을거라는 절망을 맛보았다.      


이를 테면, 책상에 위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진동 소리조차 나는 인지가 안 되었다. 

진동이 소리가 있다니! 들리지 않는 좌절과 소리의 존재에 대한 새로움이 공존했다.      

당시 실습 중이던 어린이실에서 담당선생님과 이야기 중에 울린 전화벨.   

  

“어우 깜짝이야. 소리 너무 크죠?”     


나는 전화벨 소리 인지조차 안 되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랬다는 담당선생님의 말씀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해야할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해야 할 텐데, 취업을 앞 둔 나의 걱정은 오로지 듣는 것 뿐이었다. 


실습하면서 느꼈던 전화를 받는 업무에서 사소한 지시를 알아듣는 것 조차 나에게는 넘지 못 할 큰 산이었다. 걱정과 불안을 안고 취직한 첫 번째 직장은 작은 도서유통업체였다. 그곳에서 나의 업무는 거래처에 납품할 도서의 전산 작업부터 납품 및 현장 정리까지 전체적인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작업이 모두 마무리된 도서는 납품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한다. 

정리된 도서와 파일에 입력되어 있는 순서가 맞게 되어있는지 대조하는 작업이다. 한 명이 정리된 도서명을 부르면 나머지 한 명은 파일에 적혀 있는 도서명과 일치하는지 확인을 한다. 

사수가 도서명을 부르면 내가 파일에 적힌 것과 대조하는 것을 했는데 내가 듣는 것을 캐치하지 못 한 다는 것을 안 사수는 그 뒤로 나에게 해당 업무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런 사수의 배려가 불편했고 그런 배려를 받아야 하는 내 자신이 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길에 변태를 마주쳤다. 사람이 없는 길가에서 변태를 마주한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무서웠고 가던 길을 되돌아 다른길로 출근을 했다. 무섭고 놀란 마음으로 출근을 하자마자 영문도 모른채 사장님 앞으로 불려가 한소리를 들었다. 


‘이건... 뭐지? 뭘 하라는거지? 내가 뭘 잘 못했다는거지?’ 


웅얼웅얼 하는 사장님의 입모양을 읽어 낼 수가 없었고, 분명 혼나긴 혼나는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불려가 혼나니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고 사장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유추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혼나는지도 모른채 “네, 네” 하며 알아들은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무실이 사장님 책상 앞으로 직원들 책상이 일렬로 놓여진 공간이었는데, 내가 사장님에게 한소리 듣고 자리로 오니 옆자리에 있던 사수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사수에게 아침에 있었던 변태 사건을 이야기 해줬고 사수는 나에게 “그래도 사무실 올때는 표정관리하고 들어와~ 사장님이 아침 분위기에 예민하신거 같아~” 


사수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출근하자마자 사장님에게 불려간 이유를. 그리고 그제서야 사장님이 웅얼거렸던 말들이 지나가듯이 조각조각 들리기 시작했다. 


“김선생 … 회사 생활이라는게 … 아침부터 … 혼자 기분이 …”


 대충 어떤 말씀을 하셨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좌절스러웠다. 아니 내가 왜 혼나는지도 알아듣지 못 한다니...!   

  

6시면 퇴근이다. 나는 언제나 퇴근시간을 기다렸고, 당시 야근과 토요일 근무가 빈번했던 회사에서도 여자였던 나와 사수는 퇴근시간을 배려해줬다. 

그 날도 여전히 6시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퇴근을 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업무 마무리에 바쁜 사수는 끝날때까지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나는 내가 왜 기다려야하는지도 모른체 흐르는 시간들을 1초 1초 세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사수는 바쁘게 진행하던 업무를 정리해서 나에게 넘겨주었고 내일 몇 시까지 어디 도서관으로 가면 된다는 출장 업무를 안내해줬다. 

내일 출장이 내 업무가 된 것이 어느 순간 부터였을까? 내일 당장 출장이라는 것도 모르고, 모두들 내 출장업무를 위해 분주한 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오로지 퇴근만을 기다리고 있던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사무실에 전화기는 딱 두 개가 있었다. 사장님 자리에 한 개. 직업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메인 전화기 한 개. 직원 책상 4개가 일렬로 놓아져 있었고 그 첫 번째 자리에 전화기가 놓여져 있었다. 그 자리는 팀장님 자리였고, 팀장님 옆자리가 내 자리라 팀장님이 부재중일때는 내가 전화를 받아야 했다. 

팀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날때마다 나는 엄마와 떨어지는 아기새처럼 불안에 떨어야했고 병처럼 화장실을 찾아 일어서곤 했다. 팀장님을 따라 일어나 사무실을 어슬렁 거릴때마다 전화를 받기 위해 뛰던건 팀장님 자리에서 두 칸이나 떨어져 있던 내 사수였다. 


24살의 나는 첫 직장을 약 3개월을 겨우 다니고 그만두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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