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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Jan 05. 2023

10.참이슬 안 시켰는데요?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대학 생활 4년 동안 쉼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충당했다.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편의점 아니면 호프집. 두 업종 모두 서비스업이라 손님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야하는 것이 나에게는 고된 일이었지만 호프집은 시끄러워서 못 들은척 하기에 더 없이 안성맞춤이었고, 편의점은 손님을 바로 앞에서 대면하니 조금 더 수월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의 첫 아르바이트 경험은 고3 수능을 마치고 시작했던 회덮밥 가게에서의 서빙이었다. 


다만 그 첫 아르바이트는 한 달도 채 채우지 못하고 잘. 렸. 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첫 아르바이트이자 사회생활이 당혹스러웠던 감정은 고스란히 기억이 난다. 고3 수능 이후라 오전에 학교에 다녀오면 오후에는 시간이 비어서 시작했던 평일 아르바이트였다.    

  

가게에 출근해 앞치마를 두르면서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었다. 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경험이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메뉴판에 메뉴들을 새기고, 주문하면 나가는 기본 세팅들을 배우며 아르바이트 업무를 익혀가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던 아르바이트생 언니와 함께 홀을 보고 있는데 한 남성분이 들어왔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메뉴판을 손님에게 가져다 드렸다. 

손님은 메뉴판을 한번 쭉 훝어보시고는 주문했다.     


“*** 되나요?”     


“네? 어떤거요?”     


“*** 이요~^^”     


“아 잠시만요! 확인하고 올게요!”      


아무리 메뉴판의 메뉴들을 스캔해도 손님이 말한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너무 당황했던 나는 홀에 있던 언니에게 부탁했다.      


“언니, 손님이 주문하는게 어떤건지 모르겠어요...”     


메뉴들을 모두 머릿속에 입력해서 단어가 들릴 줄 알았는데 들리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결국 주문을 받지 못 하고 돌아온 나 대신에 주문을 받아 온 언니는 주방에 주문을 넣었다.      


“회덮밥 하나요~!”     


그 뒤로 그날 오후 아르바이트는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스러움과 눈치의 연속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회덮밥’ ‘회덮밥’ 만 무수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만약 우리집이 조금 부유했다면, 이 식당을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라는걸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서 걱정없이 대학생활만 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나는 다시 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되도록 사람들하고 소통이 필요없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동네를 걷다가 설거지 구하는 글이 보이면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사장님들은 하나 같이 어린 여자아이가 와서인지, 설거지하는 아르바이트를 시키지 않으셨다. 


그렇게 호프집 주방 업무를 물어보러 갔다가 의도치 않게 호프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호프집 아르바이트는 할 만했다. 큰 음악소리에 다들 듣는게 수월하지 않았고, 내가 놓치는 소리들 (예를 들면, 벨소리) 에 대한 핑계 또한 그럴듯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받아 빌지에 작성을 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참이슬이랑 안주는 이렇게 맞죠?”     


빌지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주방에 안주 이름을 외쳤다. 나머지 아르바이트생들은 내가 내려놓은 빌지를 보고 각 자 세팅을 시작한다. 다른 알바생이 먼저 얼음물과 기본 안주를 내놓으면 나는 주방에 안주를 주문함과 동시에 냉장고에서 필요한 주류를 꺼내어 테이블에 가져다 놓는다.     

주문받은 참이슬 병과 소주잔을 명 수에 맞춰 테이블에 내려놓았더니, 손님 일행이 나를 쳐다본다.      


“저희 참이슬 안 시켰는데요?”


손님이 주문한 건 참이슬이 아닌 삼천이였다. 맥주 3000cc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종종 할 수 있는 실수일 수 있지만, 당시 이런 주문 실수를 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고, 이미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격지심이 있는 나로서는 저런 실수 한 번에 멘탈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잘 못 받은 주문 실수, 띵동~ 하고 울리는 벨소리, 음식이 나오면 주방에서 치는 종소리를 듣지 못해서 눈치코치로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다른 직원이 주문받을 때 손님의 입모양을 보고 주문 메뉴를 맞힐때면 다들 나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거 마냥 신기해하였다.      


나만 ‘못’ 듣고 나만 ‘잘못’ 듣는 상황이 생기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어찌해야할지 몰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나라는 존재가 땅끝으로 추락해버렸다.


중고등시절에는 자존감이 늘 꾸깃꾸깃 꾸겨져서 땅바닥에 굴러다녔다. 그 자존감이라는 종이를 펴 볼 여력도 없었고, 듣지 못 함을 확인할때마다 더 꾸깃꾸깃 밟혀져버렸다.      

5년 전과는 다르게 작은소리에 반응 할 수 있는 인공와우 착용 후, 나는 나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은 나의 꾸깃꾸깃 접힌 자존감을 하나하나 펼쳐주기에 충분했지만, 오랫동안 접혀있던 주름들까지 펴주기에는 부족했다. 


여전히 나의 자존감은 가슴 깊은 곳 저 밑에서 항상 긴장한 상태다. 혹시나 또 못 듣는 상황들이 생기면 펴졌던 자존감들이 미처 펴지지 못한 오래된 선들을 따라 꾸깃 접히는 듯 하다. 


나의 자존감이 긴장의 끈을 놓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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