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나는 성인이라는 자유와 캠퍼스라는 낭만에 취해서 새로 시작되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비공식적 청각장애인이었던 나는 여전히 ‘잘’ 못 듣지만 평범한 스무 살에 지나지 않았고, 나에게는 장애인이라는 공식적인 진단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람들에게 오픈해야 할 문제도 있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지내오면서 익혀왔던 내 방법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여러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지면서 1학년 과대표라는 임원을 맡기도 했다.
나는 못 듣는 것보다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긍정과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며 성장해 나갔다. 순조롭기만 할 줄 알았던 대학 생활에서 첫 번째 위기는 꽤 빠르게 예상치도 못 한 곳에서 찾아왔다.
“출석체크하겠습니다.”
03학번인 나는 출석 체크를 교수님이 그 수많은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체크하셨다.
놀기 좋아하는 나는 친구들하고 매번 강의실 뒷자리에만 앉았고 교수님과의 거리가 멀수록 교수님의 입 모양으로만 내 이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친구들은 고개 숙이고 재잘거리다가도 본인 이름이 불리면 손을 들고 “네~!” 대답을 하였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던 나는 첫 강의부터 정말 멘붕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좌절할 내가 아니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출석체크는 과별로, 해당 과 중에서도 가나다순으로 이름이 정렬되어 있었기에 우리 과에서 내 바로 앞 번호인 친구를 먼저 파악했다.
그 친구와 같이 듣는 수업에서는 그 친구가 대답하는 순서만 기다렸다. 그 친구 다음에는 내 이름이 불리는 순서였다.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그 친구와 내가 같이 어울리는 무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공 및 필수 교양이 아니고는 같이 듣는 수업이 없었고, 내가 노는 무리에서는 가나다순 정렬에서 내가 항상 첫 번째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한 강의실에서 그 분위기에 한껏 취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듯했다. 웃고 있지만 긴장되고,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듯하지만 온 신경이 교수님에게 향해있는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던 나는 그냥 내려놓기 시작했다.
출석 체크 시간에 매번 무언가에 집중을 했다. 그러면 착하디 착한 내 친구들은 나를 다급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너 너~ 너 부르잖아~!!”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내 이름을 알아 들어야 하는 그 순간들이 정말 힘들다.
만약 그때 내가 장애인으로 등록된 ‘청각장애인’이었다면 조금 더 상황들이 수월했을까? 종종 생각해 보곤 하는데 나이를 먹고 장애를 받아들인 지금에서야 내 장애를 오픈하는 게 수월한 거지 그때의 나라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