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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22. 2022

8. 트라우마가 된 휴대용 버너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나는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 둔탁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고 고음이나 작고 얇은 여자 목소리(고주파라 불리는 소리들)는 알아듣기가 굉장히 힘든 상태였다. 



같은 거리에서 엄마가 부르면 잘 안 들리고, 아빠가 부르면 들리는 상태랄까. 


고등학교 때 우리 집 가스 문제로 가스버너를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엄마: 경애야 주방에 있는 냄비 좀 불에 올려놔 줘



탁! 탁! 



나: 아! 이거 왜 이렇게 안되는 거야!!



순식간이었다. 내 눈앞에서 갑자기 폭발하듯 치솟은 불길은 냄비를 감싸 안으며 지붕까지 치솟아 올랐다. 놀라기도 잠시 폭발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자마자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가족들도 아연실색.


“가스 새는 소리 못 들었어?????” 

“아니 방에서도 소리가 들렸는데 그걸 못 들었어?????”

나는 단 한 번도 가스 새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물론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겠지만, 뭔가 새는 소리가 난다면 그걸 들을 수는 있겠지) 더불어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도 실제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는 소리의 영역이었으므로. 

고등학생인 나는 아직도 비공식 청각장애인이었다. 

청력검사를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어 그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잘’ 들리지 않는 상태로 지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덜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진정하기에 바빴다. 청각장애인도 아닌 내가 ‘잘’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들리지만 안 들리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소리로 인지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답답함을 느꼈다. 



가끔 가족들이 “안 들렸어?” 하고 답답함 반 의심 반의 질문을 하면 나는 화부터 나왔다. 


“아 왜~! 왜 불렀는데?!” 



‘안 들리는 거 알면서 왜 물어봐?’ 하는 반항심과 함께 ‘나도 잘 듣고 싶다고’ 하는 희망이 섞인 울분이었다. 



약 20년이 흐른 지금도 휴대용 버너의 탁탁!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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