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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21. 2022

7. 원래 잘 못 듣는 사람들이 있어요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고등학생이 되면서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나에게 치명적인 핸디캡이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선생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했고 선생님 입에서 모르는 단어들이 나오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설명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무엇보다 선생님 입에 집중하느라, 사춘기 소녀들이 수업 시간에 재잘재잘하는 것을 포기하기에 나는 용기가 없었다.


‘잘’ 듣지 못하는 나는 ‘수업시간’과 ‘친구’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공부 대신에 아이들의 부름에 바로 응답할 수 있게 주위 친구들에게 에너지를 집중하기를 택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친구의 작은 부름에 잠깐씩 응하는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상황인데, 나에게는 선택을 해야하는 하나의 순간으로 작용되었다. 친구들의 작은 부름을 놓치는 횟수가 하나 둘 쌓여갈수록 내가 고립될 거라는 자명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톡톡!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 책상을 치며 말한다.



“너 부르는 거 같은데?”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중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 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1분단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지정되었던 나는 뒷 자리에 앉은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기 초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라서 서로 친해지기 위해 실없는 농담과 이야기들이 쉼 없이 오고 갔다. (학창시절의 나는 늘 뒷자리를 희망했다. 뒤에서 누군가 부를까봐 늘 불안했던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길 바라면서.)




어느 날 쉬는 시간, 문제집을 풀고 있는 나를 뒷자리 친구들이 불렀나보다. 



내 이름을 한참을 부르는데도 반응이 없으니, 앞 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결국 대신 나를 불러주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당시 교실에 있던 정수기에 물통을 올려야 하는데 힘에 부쳐서 도와달라고 뒷자리 친구들이 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또 다시 내 주위를 감싸는 무거운 공기의 흐름을 느껴야 했다.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다 듣고 있는데 왜 너만 반응이 없는거야?' 라는 무언의 외침이 섞인 공기는 내 존재 자체를 바닥으로 추락시키겠다는 마냥 나를 무겁게 눌러댔다. 



그 순간의 나는 문제집에 굉장히 집중했던 모양으로 비춰져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가 ‘잘’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냥 자연스럽게 뒷자리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결’이 맞지 않아 그랬을수도 있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멀어지게 된 것만 같다. 내가 잘 듣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격지심 일지도 모르겠다.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아이들과 답 맞추는 행위를 나는 절대 하지 않았다. 


국어 듣기평가와 영어 듣기평가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일단 먹고 들어가는 점수였다는걸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들을 수(hear)’는 있지만 어떤 단어인지 분별을 할 수가 없다. 





[안중근은 우덕순의 하숙방으로 갔다.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 왜 우덕순의 하숙방으로 발길이 향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은 왜, 라기보다는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얼빈 中 김훈 저] 



위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면 나에게는 다음과 같이 들린다. 



[안중근은 OOOO OOO 갔다.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OO 왜 OOO이 OOO으로 OO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왜, 라기보다는 그렇게 OOO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중간 중간의 중요한 단어 및 명칭이 분별이 안되니 대충 이 문장이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고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안중근’ ‘이토’ ‘하얼빈’의 경우에는 아는 단어이기에 조금 더 쉽게 분별이 되고, 안중근 – 하얼빈 – 이토 라는 단어의 연관성(예측성) 때문에 단어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어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도 포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내 상황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게 이 무렵이었다. 


교복을 입고 비장(悲壯)한 마음으로 학교 근처의 (작은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작은 소리들이 잘 안 들려요.” 



청각 검사가 아닌, 귀 내부를 확인하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진료가 마무리 되었다.



“원래 작은 소리들을 잘 못 듣는 사람들도 있어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더 그럴 수 있으니 곧 괜찮아질겁니다.”



그 진료는 나를 더 절망에 빠트렸고, 곧 괜찮아질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나에게 전혀 위로도 희망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내가 더 자세하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스트레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필했어야 했다는 것을.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괜찮아질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지만, 내 상황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도 안 났기 때문이다. 




하교길에 스스로 이비인후과에 갔던 건, 내가 잘 듣지 못 하는 것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혹은 합리적인 의심을 발견하고 싶어서였다는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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