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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20. 2022

6. 고소영 아이크림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나에게는 우리 엄마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외할아버지가 계셨다. 


외할아버지의 큰 딸이었던 우리 엄마를 많이 아끼셨지, 엄마의 딸인 나를 특히 애정 하셨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애정과 별개로 서울 신사 같이 세련된 느낌의 우리 외할아버지는 어렸던 내 기억에도 꽤 잘 생기셨고 우리 엄마는 잘생긴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는 별로 물려받지 못 한 듯하다. 


어차피 나는 친탁이라 외탁의 유전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어 잠시 외할아버지를 추억해보았다. (어째 엄마의 유전자 디스인 듯 하지만)



가끔씩 뵙는 외할아버지는 화가 별로 없으셨다. 말씀도 별로 없으신데 그렇다고 크게 다정했던 기억도 없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딱 ‘츤데레 스타일’이었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딱 한번, 나에게 극대노 하신 적이 있다. 실제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외할아버지의 뒤로 화르륵하는 불덩어리를 기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방학에 외할아버지가 계신 작은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되었다.

당시 작은 집은 공장 같은 넓은 공간에 집이 위치하고 있는 구조였는데, 그 공장 같은 곳을 뛰놀고 있는 나에게 외할아버지가 뭐라 뭐라고 외치셨다. 


가뜩이나 넓은 공터 같은 공간이라 말이 울려서 더 알아듣기가 힘들었던 나는 눈치코치로 외할아버지가 지시하는 것을 집어보았다. 외할아버지 앞으로 달려가서 전달 사항을 제대로 듣기엔 너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외할아버지: 거기 @$$^@^ 좀 가져와봐~     


: ...? 이거요?     


외할아버지: 아니 거기 #$^#%


: 이.. 거요..?     


외할아버지: 옆에 옆에!!!     



이런 대화가 대여섯 번 오갔을까. 외할아버지께서는 결국 참지 못 하고 달려 나오셨다.     

외할아버지: 이 놈의 계집애가 귀가 처먹었나!!!! (쒸익쒸익)     



외할아버지가 나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낸 분노였다. 


친밀함의 감정이 적은 어른 가족이 나에게 짜증과 함께 분노했을 때는 서운함 감정도 억울함 감정도 전혀 들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그냥 할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인공와우를 한 지금도 그렇고 보청기를 착용하기 전도 그렇고, 단순히 크게 말한다고 해서 더 잘 들리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 볼륨을 아무리 크게 울려도 소리가 퍼지면 알아듣기가 힘들다. 난청인들이 알아듣기 편한 소리는 명료한 발음과 입모양(입에 힘이 없이 말씀하시는 분들과의 대화가 특히 더 힘들다. 발음이 흐르는 느낌과 입술의 움직임을 읽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리고 중저음 목소리 톤의 적당한 빠름이다. 


배려한다고 너무 천천히 말씀하셔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고, 빠른 말은 더더욱 알아듣기가 힘들다.     



분별이 안 되는 듣는다는 것은, “엄마 오늘 학교에서 @%$&#%^ 했어요”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무슨 말이지 모르겠는 상황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이다.      



인공와우를 착용한 현재 통화질을 비교할 때 


스피커로 통화 < 인공와우 스피커 부분에 휴대폰을 대고 통화 < 인공와우 액세서리인 미니 마이크라는 보조기기를 활용해서 통화


이 순서가 나에게 가장 깔끔하게 잘 들리는 순서이다.

미니 마이크라는 보조 기기를 착용하면 휴대폰 소리를 와우로 직접 들을 수가 있어(블루투스처럼 와우로 소리가 바로 들어온다.)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바로 와우를 통해 귀로 들어오기 때문에 음질이나 명료도가 가장 깔끔하게 들어온다. (재활을 하지 않아 분별도는 많이 안 좋지만)      



난청인들에게는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보니 잘 못 듣는다고 하면 무턱대고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상대방 나름의 배려에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난청인들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는 가까이에서 다시 천천히 말하거나, 특정 물건의 이름보다는 다른 명칭으로 계속 설명해주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오늘 손난로 가져가도 돼요?’라고 물었을 때 ‘뭘 가져간다고?’ 하고 못 알아들으면 계속 ‘손.난.로!’ 하고 외치는 것보다는 ‘손 시릴 때 따듯하라고 만지는 거 있잖아요.’라는 식으로 다른 설명으로 인지시켜주면 훨씬 더 금방 알아듣는다. 한번 안 들리는 단어는 멘탈이 나가서 진짜 안 들리기 때문이다.      


  



잘못 알아듣는 것을 다시 재확인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잘못 알아들은 단어를 그 단어로 믿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청기를 착용하던 때에,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 고소영 아이크림을 주문했는데 다음 주에 택배로 갈 거야. 전화 잘 받아~


: 뭘 주문한 거야 또~ 알겠어     


가끔 친정엄마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종종 사주실 때가 있었다. 

괜한 돈을 쓴 거는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전달받은 택배는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포장되어 와서 너무 당황했다.      


‘아니, 엄마 사기당한 건가????’

‘요즘 아이크림은 이렇게 보내주나??? 대체 뭘 주문한 거야...’  

   

당황하고 불안한 마음에 택배 송장을 확인해볼 생각도 안 하고 집으로 바로 가지고 와 택배를 뜯어보았다. 

택배 안에 가득 차 있던 건 ‘고소영 아이크림’이 아니라 손녀딸들을 위한 ‘구슬 아이스크림’이었다. 

     

구슬 아이스크림이 왜 고소영 아이크림이 되었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가끔 상대방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혼자 엉뚱한 말을 대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너무 민망해서 상대방의 말을 다시 확인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 혼자 고소영 아이크림이라고 생각하고 받은 택배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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