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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Dec 19. 2022

5. 내 생일은 십 월이야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만 가능했던 청력이여서였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발음이 이상하다는 이야기, 왜 이렇게 못 알아듣냐는 이야기, 방에 있으면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못 듣는 나를 누구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저 


 ‘왜 이렇게 못 들어?’

 ‘안 들렸어?’


 답답해하면서


 ‘원래 잘 못 듣는 아이지’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버렸다. 



나도 그런 나에게 익숙해져 있었고, 가까이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들리니 그럴 때마다 ‘나 잘 들리는데!’  자위하며 내가 못 듣는 게 아니라는 증거들에 집중하기에 바빴다. 



‘봐 이 소리도 들을 수 있잖아’

라는 사실 확인이 

나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 나무에 연결할 가지가 되었고

 그 연결 가지들을 늘리려고 

아무도 모르게 내 앞에 보이는 것들에 

귀를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으면 나는 

소름 돋는 소리를 공감하는 척만 할 수 있었던 나는 

1등으로 등교한 교실 칠판에 

귀를 대고 손톱으로 긁어보았다.


 ‘이 소리구나.’ 


그렇게 나는 눈으로 인지하는 보이는 소리의 영역이 늘어났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 때마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가족 누구와도 내가 어디까지 듣고, 

어떤 소리들을 못 듣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도,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떠한 불편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그 상황들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하였지, 

그 상황을 ‘인정’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인정’을 하게 되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아마도 그 불안은 ‘청각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타이틀이 생기는 것을 테다.




 나의 불편함을 피부로 느끼며

 ‘인지’와 ‘인정’ 사이에서 

매일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늘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특히 그 분노는 가까운 가족들에게 

쉽게 표출되었고 

답답한 가족들이 가끔씩

 “안 들려?!”라고 물으면 

불승분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기 일쑤였다. 


 


감사하게도 내가 자랄 때는 

미세먼지며 바이러스 질환으로 인한 

마스크 쓰기가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고 

발음을 분별하는데 집중했고, 

다수의 대화 속에서는

 대화 속에 끼는 것과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아직 순수했던 14살의 친구들은 

내가 발음을 어딘가 어색하게 해도 

웃으며 넘어가 주었고,


 나는 설소대가 짧아서 발음하기가 힘들다는 

내 나름의 사정을 일부러 퍼트리고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를 배웠는데

 발음을 몰라서 못 읽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경애는 혀가 짧아서 잘 못 읽어요!” 

친구들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선생님은 

“혀가 짧은 사람들이 영어 발음이 더 좋아”라고 하셨지만 

그 뒤로는 본문 읽어보는 것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영어를 놔버리는 미친 짓을 저질러버렸다.)



 


학기 초에 무리가 결성되고 나면 

첫 생일인 아이를 시작으로 

각자의 생일을 공유하는 것이 의례행사처럼 행해진다.


 각자 본인 다이어리를 펴고 

한 명 한 명의 생일을 표시해가기 시작했다. 


생일이란 얼마나 설레는 기념일인가! 


14살의 김경애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내 생일은 십 월이야~!” 


 


매번 웃고 넘어가 주던 친구들의 반응이 달랐다. 

그 순간의 참을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10월은 ‘시월’이라고 발음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듣지 못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실수들은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들은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그 상처는 이미 바닥인 내 자존감을 

더 바닥으로 밀어 넣었고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 나무의 가지들은 

그런 경험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지고 

사라져버렸다. 


 


현재 나랑 2년 동안

 같이 근무한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나에게서 발음에 대한

 이상한 부분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발음보다는 

억양에서 가끔 다름을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발음을 힘주어 말할 때

 어색한 억양을 느낀다고 한다. 


선생님들 생각에는, 

아마도 내가 발음이 이상할까 봐 

힘주어 말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달력이 필요해’라는 말을

 나는 힘을 주어서 이야기한다.


 ‘달. 력이 필료해’ 


뭔가 발음이 어려울 거 같은 것들은

신경 써서 또박또박 말하려다 보니

국어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법칙 및 ‘자음 동화’ 현상이

묵살되어 어색한 억양이 나오는 것 같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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