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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경님 May 15. 2023

18. 인공와우 왜 안하세요?

청각장애 엄마의 이야기

둘째를 낳고 착용한 보청기의 출력이 셋째 출산 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세 아이를 2년 터울로 출산 했으니, (둘째 출산 후 보청기 착용) 보청기를 착용한지 2년 동안 여러번 피팅을 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최대 출력이 답답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 아이 모두 전신마취를 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다. 어쩌면 그 과정들이 내 청력저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세 아이를 임신 출산하는 과정에서 나는 청각장애 4급에서 재검으로 3급 판정을 받았고 3급이라는 수치에 비해서 듣는 기술이 발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데시벨 수치에 비해서 ‘잘’ 듣는 듯한 난청인 분들이 간혹 계신다. 

예를 들면 고도난청임에도 웬만한 전화통화는 가능하신 분(실제로 나도 보청기를 착용했지만 전화는 보청기를 뺀 맨 귀로 받는 것을 선호했다.) 가까운 곳의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치이지만 가까운 곳의 노래소리나 생활소음에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도 그런 케이스였고 눈으로 보이는 소리, 입 모양을 읽는 능력이 아마도 이때가 가장 피크였지 않았을까 싶다. (눈으로 보이는 소리는, 글로 배운 소리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더 청력이 좋았을 때 들었던 적이 있는 기억들이 잊히지 않고 재생되는 듯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우기 위해서 나의 모든 능력들은 나날이 발전했고 듣지 못 하는 부분을 커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능력들이 아무리 최고치를 찍어도, 보청기로 놓치는 것들이 많다는게 피부로 느껴질때마다 좌절과 피로가 몰려왔다. 


늘 감정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셋째를 출산하고 100일 만에 내가 고등학생때 직접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던 것과 같은 심정으로 분당 서울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예약했다.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청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못 듣는거였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 어떠한 이유를 치료해서 청력이 다시 좋아지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내 기준에 가장 좋은 병원을 찾은게 ‘분당 서울대병원’ 이였다. 가장 좋은 병원은 가장 정확한 검사를 해줄 것이라는 생각,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제 갓 100일이 지난 셋째를 시어머님에게 맡기고 5살 첫째와 3살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는 그 길로 병원을 향해 갔다. 완전 모유수유를 했던 100일 된 아기를 맡기고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출산 후 첫 공식적인 외출이었다. 


첫 진료는 언제나 긴장이 된다. 

나는 공식적인 장애등록 절차를 마친 뒤에는 항상 접수할 때 멘트를 추가한다.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이름을 못 들을수도 있어요.”     


그러면 접수하시는 분들은 내 접수표에 어떠한 표시를 하신다. 

그런 과정이 불편하거나 껄끄럽지는 않았다.

(실제로 종합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내 이름을 못 들어서 1시간이 넘게 대기한 적이 있다. 너무 이름이 안 불리길래 가서 물었더니 왜 이제 오시냐고, 한참 불렀다고 해서 서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은 모니터의 내 정보를 보면서 물으셨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청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아서 보청기를 착용 중인데 청력이 더 나빠지고 있음을 느껴요. 한 번도 귀와 관련된 머리 검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원인불명 난청인지 혹은 어떤 질병이 있는건 아닌지,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천에서 분당서울대병원까지 몇 차례를 오가며 MRI를 포함한 몇 가지 검사를 실행하였고, 막연한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뭔가가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청력이 안 들렸다던지 하는 기대말이다.) 감사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인공와우 왜 안 하세요?”

“이 정도 수치면 인공와우하면 훨씬 잘 들릴텐데?”     


신경이나 귀 뼈 모양이나 다른 이상이 없기 때문에 인공와우를 하면 예후가 굉장히 좋을거라고 생각지도 못 한 인공와우 추천을 받았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의 마지막 진료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내 청력은 좋아질 수 없고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할 수치라는게 처음 장애 판정을 받았을때보다 마음을 추스르기가 더 힘들었다. 


2014년 7월 11일 나는 인공와우를 추천받았다. 


인공와우가 간단한 수술 혹은 시술이라고 생각해서 장애등록을 서둘렀을때와는 달리, 이때는 인공와우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큰 수술이라는 것을 알고 난 상태였다.     

최후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인공와우, 

지금은 인공와우라는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하지만, 당시에는 인공와우라는 최종의 선택을 해야 할 처지가 너무 서글프고 아팠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 어쩌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이 잔청들 마저 없어진다는 생각은 너무 무서웠다. 이 잔청들 마저 없어진다면 보청기 본을 뜰 때 느꼈던 귀가 먹먹하고 정말 소리가 1도 들리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될까? 상상하니 세상에 철저하게 나 혼자만 남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만 끝이 없는 밑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며칠을 울고 나니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라는 수술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이.

이런 기술마저 없는 시대였다면 내 상황이 더 암담하고 슬펐을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인공와우 카페를 찾아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카페에서 아직은 내가 인공와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는 걸 확인하려고 애썼다. 

(표면적으로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나는 정말 내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었나보다.)



이 수술이 정말 최선일까, 

답답하지만 더 버틸 수는 없는걸까? 


고민으로 늘 마음이 무거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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