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9살 7살의 세 딸들을 모두 등교시키고 빨래를 개치며 아침 방송을 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이 너무 억울해졌다.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면서 24시간 케어하는 것도 행복한 삶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전공 관련 일을 못 하고 10년을 경력 단절된 채로 보낸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어졌다.
마침 인공와우 착용 후 1년 반이 지나면서 듣는 것에 자심감도 생겼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불렀을 때 반응을 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된거다!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꼴랑 2년 사회 생활을 한게 다 였는데 그 2년 동안 전화벨 소리를 못 듣고, 사무실 밖에서 부르면 못 듣는 상황들에서 위축되었던 나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도난청인으로 보청기 착용없이 2년 동안 도서유통업체, 고등학교 도서관, 한국은행 정보자료팀 총 3곳에서 근무하였다.)
나는 개치던 빨래들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계획도 없이 그 길로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를 찾아갔다.
“저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사서 자격증을 살려서 취직하고 싶어요.”
담당자분은 내 이야기를 듣고 키보드를 탁탁탁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곳에 자리가 있는데 이력서를 넣어보겠느냐고 제안하셨고, 난 망설임 없이 메일 주소를 전달해 받고 이력서를 보내겠다고 했다. 메일주소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신랑에게 이력서를 낼거라고 전화를 걸었고, 신랑은 갑작스런 나의 취직 준비에 당황해했다. 당장 아이들 등하교부터 오후 일정까지 케어해주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나’를 생각하기로 했다.
이력서를 내고 일주일 뒤로 면접이 잡혔다. ‘학교 도서관’이라는 사실만 알고 다른 부가적인 것은 하나도 모른 채 면접을 보러 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동생이 말했다. “월급 10만원 준대도 감사합니다~ 하고 할 판이구만!”) 면접을 보러 간 곳은 특수학교였고 학교 내의 오래 방치된 도서관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그렇게 전공을 살려 10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고 도서관에 걸려오는 전화와 사람 응대에 모두 어려움이 없었다.
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교직원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사를 했다.
“저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잘 듣지 못 합니다. 한쪽에는 인공와우, 한쪽에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못 들어도 당황해하지 마시고 다시 불러주세요!”
학교에서의 근무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돈을 버는 행위는 내가 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을 등원 시키고 빨래를 개치던 평범한 주부에서 하루 아침에 전공을 살려 취직한 워킹맘이 된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행복과 에너지로 가득 찼다. 엄마의 행복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전해졌고, 워킹맘으로 활기찬 내 모습은 배우자에게도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여전히 내가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었거나, 방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면 절대 용기를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인공와우를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으나 그 선택이 내 인생을 180도 변화시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모두에게 인공와우 수술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수술에 실패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나에게 있어서만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선택이었다.) 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당연한 것을 불편함 없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작은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과 분별은 별개의 문제로 분별이 여전히 어려워서 “선생님 혹시 #%&@^ 받으셨어요?” 하고 못 알아듣는 의사전달이 10번 중 6번의 비율이지만, 전화기 앞에 붙어있지 않아도 들리는 전화벨 소리, 책을 정리하고 있어도 들리는 문 소리에, 나는 혹시 내가 놓치는 소리가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낯선 곳에서 내가 업무를 하는 행위가 편안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착용하는 나는 사람과 1:1 대화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소통은 99% 가능하고 (100%라고 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면 악의꽃을 안개꽃이라고 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해도 1:1 대화는 70% 이상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여기서 가능하다는 것은 분별을 의미한다.)
고도난청이었던 내가, 이 정도의 듣기로 빨래를 개치다 용기를 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 날 뜬금없는 용기를 내었던 나를 살며시 안아주고 싶다. 용기를 내어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