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잘하고 있었지만, 잘 살고 있진 않았다

(1). 매일 새벽시장부터 밤까지

by 이루다

새벽 4시 3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하루라도 늦잠을 자면,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없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 셔터가 반쯤 열린 새벽시장에 들어서면

상인들의 목소리가 먼저 깨어 있었다.

“사장님, 오늘 무 좋아요. 이쪽 봐요!”

무게는 손으로 가늠하고, 색은 눈으로 읽는다.

속으로는 머릿속 계산기를 튕기며,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매일 같은 일 같지만,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었다.

어떤 날은 돼지고기 값이 급등하고,

어떤 날은 배추가 얼어붙는다.

하루의 반찬은 시장에서 시작되고, 그 1시간 반 안에 절반이 결정된다.

신중하면서도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곧 생존이었다.


시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곧장 주방으로 향한다.

다듬고, 씻고, 썰고, 볶고, 끓이고.

칼질 하나에도 성격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나는 항상 일정한 크기로 썰었고, 불 조절은 감으로 읽어냈다.

그렇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오전 11시, 가게 문을 열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바쁜 오후시간,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단골손님들은 나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오늘 피곤해 보여요, 사장님.”

그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었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던 날도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 가게 문을 닫고 나면

손은 붓고, 허리는 굽고, 말수는 줄었다.

그럼에도 나는 장부를 정리하고, 내일의 재료를 메모했다.


침대에 누우면 ‘오늘도 잘 버텼다’는 생각보다

“내일도 이걸 반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장사를 하며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나도 그렇게 버텼고, 어느새 ‘버티는 기술’이 몸에 베어 있었다.

하지만 버틴다는 건,

조금씩 내 안의 무언가를 깎아내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아침 햇살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점심 한 끼를 따뜻하게 먹은 날도 손에 꼽혔다.

고객에게는 늘 다정했지만,

정작 나에게는 한 번도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잘하고 있었다. 정말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살고 있진 않았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였고,

‘이 삶이 내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은 애써 외면했다.

내가 쏟아낸 노력과 열정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지켜주기보다는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가 봐도 성실했고, 대단했고, 멋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잘 버텼다”는 말 속에,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고백이 숨어 있다는 걸.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나 자신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사랑했던 날들이었다.


열정으로 가게를 열었고,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채웠지만,

그 열정이 결국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구보다 잘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나도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새벽과 밤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잘하고만 싶었던 나를,

이제는 잘 살게 해주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1.오래오래 할 줄 알았던 일, 내려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