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성과 노동 사이의 균열
가게 문을 열기 전,
내 손끝은 늘 분주했다.
식재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았고,
반찬 하나에 손이 여섯 번 이상 간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으로 다 했다.
깻잎을 한 장씩 다듬고, 계란을 깨고, 다시마 육수를 우려내며
‘맛있게 먹어줄 사람’을 떠올렸다.
내 반찬엔 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정성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만든 음식을 제대로 씹어 삼켜본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은 침묵이었다.
반찬가게를 차린 건
‘좋아하는 일로 살아보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걸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다.
그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성은 ‘노동’이 되었다.
아주 조용히, 천천히
내 안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래도 매일 메뉴를 바꿨다.
익숙해질까 봐, 정체될까 봐.
고객들이 ‘오늘은 뭘까?’ 기대하도록.
하지만 어느 날,
늘 하던 메뉴만 반복하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기보다,
“이게 제일 편해요”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정성은 효율에 밀렸고,
마음은 타이밍에 쫓겼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구나.’
그럼에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반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았고,
주문이 몰릴 땐 두 손이 모자랐지만
“감사해요, 맛있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냈다.
하지만 점점,
그 말조차 피로를 덜어주지 못했다.
“이건 좀 짜요.”
“가격이 올랐네요?”
“이 정도면 더 싸게 파는 곳도 있어요.”
그 말들이 쌓일수록
정성은 마음속 자리를 잃었고,
남은 건 반복되는 일뿐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무릎엔 통증을 달고 일했다.
하루에 수십 번 칼을 들고, 불 앞에 서면서도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던 마음은 점점 흐려졌다.
‘일’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생존’이 되자
나는 더 이상, 내가 만든 것을
맛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나는 요리하는 기계 같았고,
정성은 점점 ‘해야만 하는 일’로 변해갔다.
가끔,
한가한 오후에 혼자 남은 주방에서
조용히 울었던 날도 있었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단지,
‘이 일을 이렇게까지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지쳐만 갈까.’
하는 질문들이 매일 밤,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정성과 노동 사이의 그 얇은 선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 틈은 점점 균열이 되어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반찬을 만들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일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단골손님이 남긴 메모.
“항상 감사해요, 사장님 덕분에 잘 먹어요.”
그 말조차 눈물로 다가오던 날이 있었다.
그 말이 고마운 동시에
‘나는 왜 나 자신에게는 이런 말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한 번도 따뜻한 한 끼를 차려준 적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잘하고 있었다.
맛은 여전했고, 손님도 늘었고, 칭찬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정성으로 지켜온 삶이
노동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잘 살고 싶었다.
그저 버티는 게 아닌,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들기까지 오래 걸렸고,
그 균열을 인정하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그 마음의 균열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그 균열이 있었기에,
비로소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걸.
이제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조금씩 다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