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잘 버텼다”는 말 뒤에 가려진 마음
가게 문을 닫은 지 어느덧 한 달.
정말 신기하게도,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몸은 쉬라고 말하지만, 습관은 여전히 그 시간에 나를 깨웠다.
문득,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잘 버텼다, 너.”
그 말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묘한 허전함이 흘렀다.
나는 정말, 잘 버텼던 걸까.
아니,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 한구석을 찌를까.
그 말엔
“이제 끝났네”라는 안도와
“정말 수고했어”라는 위로가 섞여 있었지만,
그 사이엔 아무도 보지 못한
혼자 울컥했던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기계처럼 일했고,
아픈 줄도 모르고 움직였다.
짜다는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졌고,
메모지 한 장에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한 해를 넘기고, 또 넘겼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위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고객에게,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미소 지으며 “괜찮아요” 했지만
내게는 단 한 번도
“너 진짜 고생했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잘 버텼다”는 말이
나를 위한 말 같지 않게 들렸다.
그 말은 마치
‘힘들었지만 견뎠으니 이제 됐다’는
끝맺음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끝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시간 속을 걷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버틴 게 아니었다.
참았고, 지켰고, 채웠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니 그냥 ‘잘 버텼다’는 말 한마디로
그 시간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내 마음속에선 오히려 이런 말이 필요했다.
“네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그 시간이 너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도 알아.”
“이제는, 너를 위해 살아도 돼.”
가게를 그만둔 뒤
나는 조금씩,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미뤄뒀던 나를 바라보고,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지금 나는
누군가의 “잘 버텼다”는 말보다는
내가 나에게 말해주는 위로가 더 필요하다.
“수고했어.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애썼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다시 나를 살아내는 것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더 이상 견뎌내야만 하는 삶이 아니어도,
이제는 나를 위한 하루가 시작되어도 괜찮아.”
‘잘 버텼다’는 말,
그건 과거를 묻는 말이 아니라
이제 나를 더 아끼며 살아도 된다는
작은 허락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허락은,
이제 내 입으로, 내 마음으로
내게 해주는 말이 되었으면 한다.
이 마음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말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건네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나는,
그 말 뒤에 숨겨진 나의 마음을
천천히 꺼내고 있는 중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잘 버티는 삶’에서
‘잘 사는 삶’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잘 버티는 삶'이 아닌, '잘 살아내는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