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II : 12번의 시도, 그리고 화분을 샀다.

by DL

​심장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있다.


​운전석 왼쪽 창문의 살짝 열린 틈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온다.


​이길 수 없는 조급함이 대시보드 안.

속도계를 위로 끌어올린다.


"널 향한 이 마음은 Fire, 내 심장이 빠르게 뛰잖아"


​라디오에선 블랙핑크의 휘파람 쏟아낸다.


​무심한 눈매로 템포를 감시하던 과속 카메라는

군더더기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외눈 레이저가 감정 없이 눈을 깜박여도,

나의 오른발은 반사적으로 액셀을 밟는다.


​중간에 빨간색 신호등은 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핸드폰을 열어준다.


​계란 모양의 작은 알맹이 사진이 띄워져 있다.


두 번의 여름이 지나고,

따라다니던 더위를 증기로 날리는

우연의 인위는, 길고 느렸다.


​다시 만난 신호등,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다.

​"드디어 성공이야. 보이지도 않겠지만 사진 보내."


​집에 도착하기 전, 도로 끝 언덕의 높낮이는

차를 위 아래로 흔들며 나를 맞이해 준다.


​"어떻게 됐어?"

"착상 잘 됐대. 수치도 괜찮대."


​거실 식탁 위에 코팅된 사진 한 장이 올려져 있다.

마주 본 사람과 서로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헤르츠(Hz).


​독일에서 발견된 이 전파 용어는 독일어의

'심장(Herz)'과 발음이 같다.

그날 가슴팍에 감전된 헤르츠는 내 안의 송전탑을 터트렸다.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

그의 이름 헤르츠 사후, 반복과 진동을 뜻하는

단위 되었지만 나에게 헤르츠는 이름의 단위는

혈류를 태워버릴 자산으로 변환되었다.


​라디오를 구동시키는 주파수, 메가헤르츠.

트랜지스터와 소리를 이어주는 자기장 루프가

나에겐 '이기적 유전자'와 연결된

메가헤르츠 사운드였다.


​상시로 열어둔 핸드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었고,

그 밑을 받친 테이블 위 파일철엔

두꺼운 난임 병원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파일철 옆 물컵의 탄산수는 기포를 발산하며

춤추고 있었고, 그 앞에 복숭아 한 알이 놓여 있었다.


​"5번째네, 고생 많았어. 이제 잘 먹고 쉬기만 하면 되겠다."

"그래 잘 될 거야. 더 건강해져야 해."


​멈춰진 공기에 웃음이 채워지고,

울리는 소리가 창밖으로 퍼져 나갔다.


​거실에 움직이던 공기 입자들은,

사진 속 착상된 생명의 파도를 타고 공중을 유유히 떠다녔다.


창으로 ​빠져나간 공기가 앞쪽 문을 탕, 하고 닫는다.


​다가가는 창문에 태양이 보인다.

강한 빛이 동공을 타격한다.


​하지만 오늘은 상관없었다.


보이는 감각을 잃어도, 들리는 소음을 잡지 못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 후로, 두 번의 여름이 더 지나갔다.


​총 12번의 시도.


​우린 더 이상 병원 서류를 모으지 않았고,

시험관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냥 정해진 스케줄을 소비했다.


​작은 화분 하나를 구입했다.


​"그래, 그만 됐어. 괜찮아."

"여기까지인 거 같아."


​화분에 5개의 씨앗을 심었고, 겨울까지 기다렸다.


​멈춰 있는 메트로놈이 식탁 위에 앉아 있다.

천에 물을 묻혀 굳어 있는 팔을 닦아 주었다.

스르륵 닦인 긴 스틱에 매트한 회색빛이 돈다.


​더 이상 박자를 세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종지였다.


​거실 나무 의자에 앉아, 호박(Amber) 장식의

키홀더를 바라보았다.


​얼음이 담긴 머그컵에 캐모마일 티를 붓고

비어있는 의자를 내어 었다.


​아내는 코 가까이 머그컵을 대어 향기를 맡았다.


차갑게 식은 향은 곧 입술에 닿고,

뱃속 열기는 자연히 빠져나갔다.


​우리의 심장은, 제 크기에 맞는 공명을 아가고 있었다.


​5번째 여름의 알갱이는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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