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 III : 쉼표는 발이 없다.

by DL

퇴근 후 스튜디오로 간다.


보통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고른다.


하지만 오늘은 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


그냥 핸들이 가는 방향으로,

초록 불이 켜지는 순서대로 흘러갔다.


10분을 아껴주는 고속화 도로 대신

오랜만에 시내 도로로 직진해 들어간다.


차들이 많다.


약속되지 않은 시간에 음악을 튼다.

사각형 앱에서 눈에 들어오는 앨범을 선택한다.


가다가 서고,

오래 서 있다가 다시 움직인다.


차 안을 채우는 음악들은

느리지 않은 템포에,

낙차가 크지 않은 노래를 담고 있었다.


열흘간 추위가 이어지다

오후에 잠깐 햇빛이 나와

바닥에 얼어 있던 물들을 녹였다.


상대적으로 미세먼지는 심해져

어제 보이던 건물들은

그림자만 흐릿하게 남는다.


정체된 차들에 신호가 바뀌고

앞으로 나간다.


신호와 겹쳐진 음악들 중

한 곡을 리플레이한다.


길지 않은 곡들이 모인 앨범이다.


차 안에 남아 있던 커피를 마시고,

새것이던 500ml 물병을 뜯어

물을 입에 넣으며 연속해서 듣는다.


도착할 즈음,

나와 있던 해가 들어가고

어제 보이던 빌딩들은

하나둘 테두리를 확인시켜 준다.


주차장에 도착해

경비 소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스튜디오로 들어간다.


신발들이 많다.


여러 명이 내 방에 들어와 앉는다.

이야기를 나눈다.


한 명은 지난달 연주를 열일곱 번 했다고 말한다.

옆에 앉은 사람은 졸업을 앞둔

마지막 수업을 통과했다고 하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유럽에 2주 넘게 다녀온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커피와 조각 케이크 두 개를 사

다시 스튜디오로 왔다.



신발이 조금 줄었다.


세 명이 다시 앉아 얘기한다.


올해 이사를 하고 싶다.

오디션이 꽤 있다.

다음 주도 춥다.

2월에 다 같이 어딜 가자.


시간이 흐른다.


10시가 넘어

주차장을 올라간다.


오늘도 일상이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리듬 III : 밀도 높은 곳, 쉼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