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III : 하행의 곡선

by DL

​걷는다. 길게 뻗은 강 옆으로 바람이 분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코를 타고 들어온 바람에 폐가 부풀어 오른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두 손을 패딩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깨 근육들이 서로의 장력을 뽐낸다.

얼얼함을 지탱하며 걷는다. 밑에서 당기는 중력이 발등을 감싼다. 거대한 회전문 앞에 섰다.


​그래도 가야지. 여기까지 왔으니까.


​회전문의 큰 유리가 돌아서며 나를 비춘다.

연속해서 원을 그리는 문. 그 앞에서 잠시 가만히 서 본다.


​속에서 대답이 들린다. 잠깐 앉았다 가자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낀다.

아델의 목소리가 흐른다. 벤치에 앉는다.


같은 화성의 무한한 반복.

음역의 확장보다 머무름을 선택하고 반복한다.


​문을 밀고 나오는 사람들은 얼굴을 비운 채 빠져나간다.

회전문이 다시 나를 비춘다.


유리문을 민다.


​들어갔는데 나왔다.

분명 문을 돌아 들어갔는데 중간이 상실된 체로 나와

제자리를 등지고 있다.


​다시 이어폰 속 아델을 듣는다.


​목을 젖힌다. 뒷목의 뻐근함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부딪친다.

동공이 좁아졌다가 다시 열린다. 시원한 바람이 폐에 안착한다.


몸속 압력이 풀린 근육들을 지나간다.


홀 앞 스낵을 판매하는 작은 푸드트럭이 있다.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주문한다.


​부드럽게 나를 밀고 있는 신발이 땅의 힘을 발바닥에 전달한다.

강은 평행으로,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


나도 따라 옆으로 걷는다.


오르내림의 반복. 나를 감싼다.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과 섞여 들어온다. 강 옆에 서 있는다.

철제 가림막을 따라 걷는다.


​추운 날씨가 다시 찾아온다.

회전문을 지난다.

​궤적을 흐르게 둔다.


그냥 동그란 원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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