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받아들이기

- <문라이트> -

by 임성민


영화 <문라이트>는 201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영화는 마이애미 출신 작가인 터렐 앨빈 맥 크래니(Tarell Alvin McCraney)의 희곡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인 맥 크래니와 감독인 배리 젠킨스는 둘 다 마이애미에서 자란 흑인이고, 게이이며, 하층민이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만든 <문라이트>는 기존의 퀴어 영화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 우선, 등장인물 모두 흑인이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마약쟁이 엄마와 둘이 사는 흑인 게이로서 세상의 편견과 억압을 이겨내는 틀에 박힌 성장담이 아니라 주인공이 사회적 압력을 어떻게 느끼는지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크게 유년기인 ⅰ.Little, 청소년기의 ⅱ.Chiron, 성인이 된 ⅲ. Black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 리틀은 작고 왜소해서 붙여진 주인공의 별명이고, 2부 사이론은 주이공의 이름, 3부 블랙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케빈이 부르는 별명이자 마약상인 주인공의 활동명이다.

1부에서 주인공은 주변인들의 말을 통해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후안의 집에서 샤이론은 “호모가 뭐예요? (What’s a faggot?)”라고 후안에게 묻는다.[시퀀스 분석 20번] 이 소년은 전형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에 대사에서 다른 아이들과 걸음걸이가 다르다는 것과 공놀이에서 빠져나오는 장면,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는 괴롭힘의 이유가 된다.

2부에서 테렐과 같이 괴롭히는 인물은 샤이론을 ‘리틀’이라고 부른다. 반면 케빈은 ‘블랙’이라고 자신만의 별명으로 샤이론을 부른다. 이처럼 주인공을 부르는 명칭이 교차되며 과도기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2부에서 샤이론은 ‘리틀’처럼 괴롭히는 사람과 맞서 싸우기보다 피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블랙’처럼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괴롭힘에도 참고 피하기만 했던 샤이론이지만, 테렐이 케빈을 이용해 자신을 때리게 만들자 교실 의자로 테렐의 머리를 내려치는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 샤이론은 동성애를 자각한다. 학교에서 케빈이 여성과 성관계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날 밤 케빈과 여성이 성관계하는 꿈을 꾼다. 그러면서 케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고 이후 바닷가에서 만난 케빈과 키스를 나누게 된다.

3부는 2부에서 10여 년이 흐른 시점으로, 샤이론은 마이애미를 떠나 애틀랜타에서 마약상을 하고 있다. 그의 외형은 1부 리틀이나 2부 샤이론하고는 다르게 근육질의 다부진 체격이며, 금으로 치장한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을 블랙이라고 말하며 자기 부하에게이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오프닝에서 차를 타고 등장한 후안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2부에서 테렐이 꾸며서 자신이 사랑하는 케빈에게 맞아야 했던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케빈의 전화를 받고 만나면서 해소된다. 케빈의 집에서 샤이론은 케빈에게 “날 만져준 사람은 너 하나뿐이야 너 하나였어 그 후로 아무도 만져본 적 없어” 말한다. 이후 케빈의 어깨에 샤이론이 기대는 모습으로 디졸브 되며 화해를 통해 샤이론은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케빈에게 고백한 점이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부에서는 주변의 말을 통해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2부에서 샤이론은 케빈과 키스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며, 테렐의 괴롭힘으로 인해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성격 변화를 보여준다. 3부는 기존의 왜소했던 체형이 아닌 근육질의 남성적인 몸으로 전환되며 외적인 요소에서의 변호가 나타난다. 또한 마지막에 케빈에게 직접 고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한다.


미셸 푸코는 “자신을 인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될 만큼 충분히 안정적인 것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몸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타인들로부터 나라는 존재를 구분할 완전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키, 아름다움, 몸무게 등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모두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개념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푸코는 “개인은 …… 권력을 마주한 상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은 권력이 생산하는 주요한 효과 가운데 하나다.”라고 보았다. 즉, 우리는 개인이 권력의 통로라고 생각하지만, 권력은 그 보다 앞서 우리를 특정한 종류의 개인으로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C.G. 프라도는 이와 관련해 “주체가 성공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권력이 만들어낸 주체가 자기 자신이 원래부터 그러한 주체였다고 믿는 일이 필요하다. …… 효과적인 규율기술은 개인이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 성찰할 때, 자신이 어떻게 주체로서 생산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특성만을 발견하도록 만든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진짜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다는 권력이 부여한 특성에 집중한다. 권력이 정한 쿠키틀대로 모양을 찍어내는 것이다. 왜 그 모양의 쿠키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모양의 쿠키틀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다른 모양의 쿠키가 나오면 이는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주인공은 왜소하고,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공놀이에 함께 하지않는 등 권력이 부여한 특성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주변에서의 압박으로 나타난다. 결국 테렐에 의해 케빈에게 배신을 당한 샤이론은 완전히 변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블랙’이 된 샤이론은 몸을 키워 남성적인 몸매를 만들고, 부하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남성성을 과시한다. 푸코는 이에 대해 규율사회가 ‘유순한 몸’을 생산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유순한 몸은 개인의 가시성, 다른 사람의 시선,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감각을 내면화한, 빈틈없고 획일적인 시민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가장 내밀한 순간에도, 특히 성적 실천을 하는 내밀한 순간에도 자신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개인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같은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이들은 동료 집단이다. 식당에 모여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 질문의 답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흑인이 되는 법을 알고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에서 [묘사하는] 흑인 청소년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그 이미지를 자기 표현에 반영한다. - 베벌리 테이텀
우리는 모두 지배적인 역사와 기억을 빌린 사람들이며 이에 순수하지 않다. …… 정체성과 정체화는 절대 같지 않다. 필연적으로 모든 정체화는 실패한 정체화다. - 데이비드 엥


정체성은 문화 산물로서 우리는 이를 학습한다. 샤이론이 블랙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규율을 내면화해야 한다. 주인공은 ‘호모’, “탐폰 갈아 끼는 걸 깜빡했겠죠”, “샤이론 따먹어버릴까 보다”, “게이는 관심 없지만 내 성질 건드리면 먹어버릴 거야” 등 모욕적인 말과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불쾌한 시선을 겪어내야만 했다. 이처럼 흑인이자 성소수자로서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을 주인공의 내면을 진실되게 그렸다. 이를 위해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많이 활용되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이미지는 바다에 대한 이미지이다. 후안에게서 수영을 배우는 장면, 케빈과 처음 키스를 나누는 장면, 케빈을 만나러 가는 도중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노는 장면 등 곳곳에 바다가 중요하게 나타난다. 대양(바다)는 원초의 바다, 혼돈, 무형성, 질료로서의 존재, 끝없는 운동을 상징한다. 또한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생명의 원천, 현현된 가능성의 총체, 헤아릴 수 없는 신비, 우주령, 태모를 뜻한다. 또한 대양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건너야 하는 인생의 바다를 의미한다. 바다는 샤이론에게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생명의 원천이자 태모와 같은 공간으로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다의 색깔인 파랑의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파랑은 가질 수 없는 희망과 그에 따른 우울이라는 심정성을 나타내는 색채이다. 파랑은 상실감을 치유하고 회복을 가져오는 색으로 물의 이미지와 관계가 깊다. 물은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며 삶과 죽음이 하나로 합쳐진 평안함을 느끼게도 한다. 파랑은 어둡고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도 작용한다. 실제 색채심리 조사결과에서도 파랑을 좋아할 때의 심경으로 절망, 이별, 고독 등의 상실감의 느낌과 정화, 치유, 해방감, 새로운 나, 자립, 희망, 회복, 재생의 느낌을 받는 등 크게 두 가지 감정을 반영한다.

대표적으로 바닷가에서 케빈과 키스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샤이론은 학교와 집에서 타자화되어 있다. 학교에서 또래 무리에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는 마약에 찌들어 샤이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테렐 일행에게 거리에서 모욕적인 언행을 받은 샤이론은 어디도 가지 못하고 정거장을 서성거리다 바닷가로 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케빈을 만나 처음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샤이론은 이를 통해 외롭고 절망적인 심정에서 벗어나 치유와 희망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바다와 파랑의 이미지가 치유와 희망, 생명의 상징이라면 이를 통해 마지막 장면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은 케빈의 어깨에 기댄 샤이론 장면에서 달빛이 뜬 바다에 소년의 뒷모습이 나오고 소년을 줌인하다 소년이 얼굴을 돌린다. 3부에서 샤이론은 케빈에게 맞었던 것을 잊기 위해 노력하면 자신의 모습도 변화시킨다. 그렇지만 그에게 그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그 트라우마가 케빈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샤이론을 괴롭혔던 기억들이 바다에서 치유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영화 제목이 <문라이트>인 이유는 후안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할머니가 날 잡더니 그러는거야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앞서서 미셸 푸코를 비롯한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믿고 있는 정체성은 사회 규범(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인종, 종교, 성적 지향, 가치관, 종교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결국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 파랑 빛을 낼 뿐이다. 물론,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수 많은 걱정이 들겠지만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귀 기울기고 남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리틀도 블랙도 아닌 케빈을 좋아하는 샤이론처럼.


참고자료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진 쿠퍼, 까치, 1994

『퀴어, 젠더, 트랜스』, 리키 월친스, 오월의 봄, 2021

「색감의 대비를 활용한 심정성 표현 기법 연구-영화 <문라이트>의 미장센 분석을 중심으로-」, 유수영, 영상기술 연구 제27호, 2017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 흑인 소년의 삶으로 그려낸 명과 암, 마이애미」, 송아름, 국토 2020년 11월호(통권 제469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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