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같은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아바타:리마스터링>

by 임성민

SF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은 지구로 침입한다. 이들은 <인디펜던스 데이>(1996)처럼 지구를 침공하거나, 때로는 <E.T>(1984)처럼 우리와 친구가 된다. 외계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영화도,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도 그 무대는 지구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우리가 생활하는 안정적인 공간에 들어와 평화를 깨뜨리는 불편한 손님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아바타에서는 그 관계가 전복되었다. 외계의 행성으로 우리가 들어가서 그들을 학살한다. 원주민의 주거지를 공격하고, 아이를 비롯한 민간인을 공격하는 가해자는 외계인이 아닌 바로 인간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는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인류가 판도라 행성으로 온 이유는 ‘언압테니움’이라는 자원을 얻기 위해서다. 이는 금광을 찾아 서부로 떠났던 서부 개척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또한 서부극에서는 개척 이주민과 원주민이 문명과 야만으로 상징되며 대립한다. 이는 <아바타>에서 쿼리치 대령으로 대표되는 군인들과 원주민인 나비족이 대립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서부극의 요소가 영화에 사용되지만, 결말은 기존 서부극과 다르다. “ … 웨스턴에서 영웅은 사회의 위협을 제거한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은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가치와 양립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 <수색자>를 비롯한 많은 서부극이 공동체의 위협을 해결한 후 떠난다.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는 쿼리치 대령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원주민 사회를 구한다. 그러나 서부극처럼 원주민 사회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네이티리와 결합하며 공동체에 남는다.


미국에서 서부 개척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신화가 되었다. 앙드레 바쟁은 “서부극은 하나의 신화 체계가 하나의 표현 수단과 만난 곳에서”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의 말대로 미국 서부의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체를 만나 “서부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확인시켰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에서 이러한 신화를 전복시키며, 새로운 신화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인류가 행해온 정복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화합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극 중에서 네이티리를 연기한 조 샐다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제임스 카메론은 인간이 같은 실수를 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깨달으라고, 배려하라고, 동정하라고 이야기한다.”라고 인터뷰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나비족에 공동체에 속한 건 제이크다. 경제적 논리의 파커도, 학교를 세우고 인간들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 그레이스도 아니다. 제이크가 이들과 달랐던 것은 그는 나비족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그들의 생활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I see you’(당신을 봅니다)라는 나비족의 말처럼 온전히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자원의 고갈 혹은 제국주의로의 회귀보다 더 위험한 건 상대방을 더 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을 때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의 말만 하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아바타>에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커는 나비족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가 반복해 온 실수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도서

『할리우드 장르』, 토머스 샤츠, 컬처룩, 2014

『영화란 무엇인가』, 앙드레 바쟁, 사문난적, 2013


잡지

‘현지보고 [아바타 리마스터링] 개봉’, 『씨네21』, 2022년 09월호, 1374호


논문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적을 보는 새로운 눈 : ‘드래곤 길들이기’ ‘아바타’」, 윤성은, 『월간 주민자치』 주민자치 Vol.121, 한국주민자치학회, 2021

「영화 『아바타』(Avatar)에 함의된 새로운 서부 신화 개척 신화화의 양상」, 이정화, 『신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자료집』, 신영어영문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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