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욕실 문이 열렸다
"간만에 시원하게 똥 쌌네!"
"어머! 정말? 잘했네 잘했어"
제 자리로 돌아가는 남편을 뒤에서 끌어안고 배를 토닥이며 칭찬해 주었다.
애도 아니고 똥 싸고 칭찬받는 기분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두유나 우유, 요구르트를 컵에 따르고 듀락칸이지 시럽을 하나 뜯어 넣는다.
듀락칸이지 시럽은 변비약이다.
남편은 이 약을 하루 세 번 식사 후에 꼭 먹어야 한다.
원래는 2개씩 먹으라고 처방받았다.
남편은 이 약만 먹으면 배가 더부룩하고 기분이 안 좋다며 마음대로 약의 양을 줄였다.
그 바람에 하루 3회 남편 몰래 약을 우유, 요구르트, 두유 등 남편이 마시는 음료에 섞어 준다.
들킬 염려는 없다.
임나무늘보라고 놀려줄 정도로 행동이 느려진 남편은 아마도 그 약을 넣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지 않는 이상 현장을 포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간암보다 간경화가 더 무섭다는 말을 들었다.
간경화의 합병증으로 간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단백질 분해가 잘 되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모르겠는데 똥을 잘 못 싸고, 그로 인해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간성혼수!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혼수상태가 될 수 있는 증상이다.
남편에게도 있었다. 벌써 3회!
처음 간성혼수가 왔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 봄이었나?
남편이 욕실에 들어갔다는 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알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들리는 소리라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블로그 챌린지 단톡방에 어떤 분이 자기 집 거실이 물 바다가 될 뻔했다는 내용의 톡을 올렸다.
멤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귀에 익숙한 물소리가 들렸다.
'어?"
시계를 봤다.
남편이 들어간 시간이 언제였을까? 나오고도 남는 시간인데!
빛보다 빠르게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욕실 문을 열었다.
물바다는 우리 집이 될 뻔했다.
아니 똥물바다!
욕실 문이 열렸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곧 넘실대는 물이 거실로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더럽고 어쩌고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머! 여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세면대의 물살이 제일 세다! 세면대가 없던 곳에 세면대를 달아놓아서인가 우리 집 세면대의 물은 관을 타고 흐르지 않는다. 그대로 떨어져 하수구로 흐른다. 그런데 그 세면대의 물이 끝도 없이 거세게 틀어져 있었다.
샤워기에서도 물이 정신없이 나오고 있었는데 샤워기는 세면대에 박혀 있었다.
변기 옆에 비데 대신 설치해 놓은 수도시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 왜 그 물들이 하수구로 흐르지 못하고 찰랑이며 넘실대고 있었냐!
우선 물이 나오는 모든 구멍을 막았다.
모든 수도를 잠그고 막혀있던 하수구를 들어 올렸다.
빠르게 욕실 가득 찰랑이던 물이 빠졌다. 둥둥 떠다니던 잔해들도 자취를 감추고 하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물을 틀고 남편을 씻겼다.
엉덩이부터 다리, 발!
"여보 이리 나와요"
그러고 보니 남편이 이상했다. 아침밥 먹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밥공기를 마치 빈병 뚜껑 열려는 듯이 잡고 여는 흉내를 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몰랐다.
옷을 입혀 놨는데 남편이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또 왜 그러지? 하며 따라 들어가니 남편이 신발을 벗고 세탁기 호스를 밟고 올라서며 욕실 창문 쪽으로 올라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간성혼수가 뭔지 몰랐던 때라 남편의 그런 행동이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가 작은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서 애쓰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여보 거기 왜 올라가려고 해요?"
"문 열려고"
"여보 문은 이쪽인데요?"
"문 열려고"
너무나 겁이 나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여보세요! 네 목사님 저희 0 집사가 이상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첫 간성혼수가 왔을 때 이야기이다.
119에 도움을 요청해서 구급차가 왔다.
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남편을 목사님이 오셔서 어르고 달래서 겨우겨우 구급대원들과 차에 태워주셨다.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남편은 나를 놀라게 하며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익숙하게 간성혼수 증상이 있다고 119에 전화를 했다.
"저희 남편이 간암환자인데요. 지금 간성혼수 증상이 있어요"라고 말하면 어떤 상황인지 묻는다.
"제가 자다 일어났는데 거실 벽을 보고 서 있어요."
"얼마나 됐나요?"
"지금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제가 일어나기 전부터라 얼마동안 저렇게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거실 벽을 보고 문이라고 문을 열려는 흉내를 내요"
"저희 남편이 간암 환자인데요. 지금 간성혼수 증상이 있어요"
응급실에 가면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바로 이러지는 처치가 바로 관장이다.
의식이 명료해질 때까지 관장을 여러 차례 진행한다.
마지막 간성혼수로 입원했을 때에는 기저귀를 갈다가 허리가 너무 아팠다.
성인 남자 기저귀 가는 방법을 몰랐다.
간호사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나중에는 너무 잘하는 내가 신기했다.
하긴 성인은 아니지만 내가 갈아준 기저귀가 몇 개인가!
간성혼수로 입원하면 보호자 상주로 이틀, 간호통합 병실에서 이틀을 기본 입원했다.
그때마다 휴가를 내거나 근무 날짜를 바꿀 수 있는 지금 이 직업이 너무 감사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 더 이상은 간성혼수로 입원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담당 교수가 알려준 방법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셔도 저희가 해드리는 것이 관장이니 집에서 변을 잘 못 보면 한 시간에 하나씩 듀락칸이지 시럽을 주세요"
몇 주 전에도, 며칠 전에도 남편이 좀 이상해졌다.
"여보 요구르트 마셔요" 아침에 하나!
"여보 낮에 이 보온병에 있는 음료 마셔요!" 낮에 하나!
"여보 프리바이오틱스 먹을 시간이에요" 밤에 하나!
그래도 변 보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머리를 굴린다. 또 어디에 넣어서 줘야 하나?
"여보 똥 못 싸면 이야기해요. 여보 오늘 좀 이상하단 말이야! 닭고기를 사 올 테니 닭고기 먹고 우리 똥 쌉시다!" 몇 주 전에도, 며칠 전에도 그렇게 똥을 쌌다.
"똥 쌌어"
"아이고 예뻐라! 똥 쌌구나! 잘했네! 잘했어!"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칭찬해 주었다.
방금도 남편은 똥 쌌다고 칭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