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신고했습니다
"경찰입니다! 신고하신 분 계신가요?"
"네! 제가 신고했습니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들은 남편의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집으로 한 분 두 분 들어왔다.
어이없는 상황인데도 덜컥 겁이 났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정말 무슨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여러 명의 경찰이 들어서니 도망갈 일도, 이유도 없었지만 뭔가 큰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정말 남편 말대로 내가 도둑이 되는 건가?'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억울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니까 남편이 암 판정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밥과 연결된, 먹는 것과 연결된 막걸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막걸리 대신 마실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밥을 먹을 때면 늘 함께 먹어야 했던 막걸리!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안 먹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어느 날부터인가 매실차를 마셨고, 매실이 달아 당이 걱정된다며 딸이 무알콜 맥주를 권했다.
"아빠 내가 이거 정기 배송 해줄게"
그때부터 남편은 막걸리 대신 매실차 대신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습관이 아직 바뀌지 않은 때였다.
내 눈을 피해 술을 마실 기회만 엿보던 때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들어왔는데 평소와 같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온 것이 분명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만 원짜리 몇 장이 나왔다.
이 돈이면 막걸리가 몇 병인가!
다른 때처럼 어디에 숨겨 놓거나 내가 가지고 가버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래! 이 돈으로 무알콜 맥주를 사다 놓자!"
병원에서도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너무 많이 마시지만 말라고! 당이 있으니 당뇨에 좋지 않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나으니 딱히 반대하지도 않는 반응을 해주었으니까...
편의점 두 곳에 있는 무알콜 맥주를 탈탈 털어 어깨가 빠지도록 옮겨놓았다.
남편이 잠에서 깬 건 새벽이었다.
또 술을 마실 생각이었으니 주머니를 확인했을 거다.
"여보! 여기 내 주머니에 있던 돈 어디 있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가서 무알콜 맥주 다 사 왔어요"
남편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남편의 눈에서 나오는 빛이 내 눈을 찌르는 것만 같아 남편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이씽! 가서 바꿔와! 빨리 가서 돈으로 바꿔와! 안 바꿔오면 너 경찰에 신고할 거야!"
금방이라도 손에 닿는 뭔가를 던질 것 같은 기세로 화를 내는 남편에게 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안 바꿔올 거예요!"
"여보세요! 여기 도둑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남편은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112를 눌렀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를 신고했다.
주소를 말하고, 간단한 경황을 설명했다.
"여기 이 사람이 제 주머니에서 돈을 가지고 갔어요"
경찰은 남편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제 주머니에 돈이 있었는데 돈을 훔쳐갔어요"
경찰은 무섭게 나를 보았다.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배우자예요"
"남편 말씀이 사실인가요?"
"네! 남편이 간암 항암 중이라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돈이 있으면 술을 마셔서 모두 무알콜 맥주로 바꿔왔어요"
내 말에 경찰의 시선이 문 앞에 쌓여있는 무알콜 맥주로 향했다.
"거짓말이에요! 그건 딸이 보낸 거예요"
"아니야! 여보! 내가 사 온 거라니까!"
"선생님! 아내분이 선생님 건강 생각하셔서 무알콜 맥주로 사 오셨다잖아요!"
"제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간 거니까 잡아가세요"
"가족은 도둑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아내분은 그 돈으로 선생님 드시라고 저걸 사 오셨다잖아요. 술 드시지 마시고 아내분 말 들으세요!"
조금 짜증 섞인 말투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 말해볼게요"
내가 나서야 끝이 날 것 같았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여겨주시길 바라며 경찰분들을 배웅했다.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인사를 해주셨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남편분 술 마시지 않도록 해주세요"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잊지 못할 이 사건이 생각났다.
경찰을 본 것도 아니고, 연관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생각난 것일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땐 그랬었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바뀌어야 하는 생활에 반항하며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보려고 온갖 애를 다 썼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했었다.
누굴 만나지도 못하고, 어딜 가서도 안 되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었다.
남편의 자기와의 싸움을 함께 견디며 응원해야 했다.
조금씩 적응하며 인정하고, 포기하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안타까웠다.
불쌍했다. 길들여져 가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시간이 지나며 남편은 변했다.
중학생 아들처럼 "오늘 면허 시험 보러 가려고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끝이다.
"카드 가져가요. 돈 넣어 놓을게요"
"통장에 돈 있었어?'
"왜요? 있었죠! 만원!"
"그렇지? 그럴 줄 알았지! 간 김에 다음 단계까지 하고 오고 싶었는데"
더 넣어놓을 수 없어서 딱 필요한 금액만 넣어준다.
남편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믿지 못하겠다.
남편은 오늘 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코스 시험까지 응시를 하고 싶었을 텐데 그냥 돌아왔다.
"다음에 다시 가서 하면 되죠!"
저녁 식사 시간의 남편과의 대화가 따뜻했다.
오늘 아침 갑자기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를 알았다.
남편은 이제 돈을 욕심내지 않는다.
술 마실 기회를 찾지 않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가져가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속상함을 표현할 뿐...
갑자기 그런 남편이 대견해졌다. 병을 이겨낸 내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