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가져다주세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지도 몰라요.”
남편의 항문 주위에 정맥류가 많이 보인다며 담당교수가 회진을 와서 내게 해 준 말이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 아닌 이상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에 정맥류가 모여 있어 우선은 그냥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변을 볼 때마다 건드려져서 피가 나더라도 혈압에 문제가 없고, 빈혈수치가 정상이면 위험한 것은 아니니 그런 상태로 퇴원을 하게 될 거라고...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정맥류가 터지면 피를 너무 많이 쏟을 텐데 바로 처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그땐 보호자님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면서 겁을 잔뜩 주고 갔다.
남편은 내시경 진정제에 취해 자고 있었다.
같은 날 두 번의 수면 내시경을 하게 되었었고 평생 수면 내시경을 처음 해 본 터라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처치실에서 뭐라 뭐라 큰소리로 화를 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왜 소리를 지르지? 내시경을 거부하나? 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병실로 올라왔을 때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에이 놔두라니까!"
"어? 어? 왜 그러는 건데 나 좀 가만히 놔둬"
간호사가 남편을 깨우고 있었다.
처치실에서의 상황이 지금과 같았음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검사를 거부한 것이 아니어서...
남편은 계속 자려고만 했다.
간호사들은 지금은 무조건 깨워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가 간 이후에도 열심히 남편을 깨웠지만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깊은 잠이 드는 것 같아 보였다.
담당교수는 그냥 내버려 두란다. 안 깬 것도 아니고 수면제에 자는 건데 뭐가 문제냐며
담배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에도 같은 반응이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담배까지 못 피우게 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냐며 나의 고민을 무색하게 했다.
담당교수에게 있어서 남편은 그냥 죽어가는 환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남편은 담배를 찾았다.
암을 진단받기 전에는 하루 한 갑을 피던 담배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갑을 핀다.
쉽게 이룬 것은 아니다.
남편도 나도 피나는 노력을 했다.
남편에게는 인내가 필요했고, 나에게는 약간의 연기력과 야박함이 필요했다.
검사 때문에 4일을 금식하는 동안 담배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음식도 먹지 않는데 무슨 담배냐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남편은 담배를 가져다주지 않을 거면 오지도 말라며 화를 냈다.
담당교수에게 물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 담배를 피울 거면 의사의 동의를 얻고 피는 것이 나으니까!
더 야박하지 못해서 담배를 가져다주고 또 몇 날 며칠을 후회할 내가 싫으니까!
금식이 풀리고 미음부터 식사를 시작한 날 담배를 가져다주었다.
"여보! 담배 피우고 싶으면 말해요! 휠체어 태워서 데려다 줄게요"
담당교수에게 남편이 퇴원을 빨리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라고 했더니 담배를 피우면서라도 병원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니 가져다주라고 했다.
"저기 사람들 담배 피우는 곳 있잖아요! 거기 가셔서 피라 하세요"
창 밖으로 보이는 흡연구역을 가리켰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과 짝이 되어 내 마음속에 둥둥 떠다녔다.
"담배 가져다주세요"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된 후부터 고분고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