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일기 읽어봤어?"

남편의 기록이 조금도 사실과 다르지 않았다.

by 어모쌤 손정화

육아일기를 쓴 아빠가 많이 있을까?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육아일기를 썼다.

딸은 아빠가 써 준 육아일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가져가기도 했다.

남편의 육아일기를 몇 번 들쳐보기는 했지만 읽어볼 생각이 들지 않아 읽어야 하지만 안 읽히는 책장 넘기듯 휘리릭 넘기듯 보고 덮기를 반복했다.

딸은 집에 올 때마다 일기장을 확인했다.

그동안 더 쓴 일기는 없는지가 궁금한 건지 거의 매번 아빠의 일기장을 찾았다.

며칠 전 딸은 아빠가 쓴 육아일기를 다시 한번 정독했다.


"엄마! 아빠 일기 읽어봤어?"

"아니, 몇 번 보려고 했는데 아빠가 너무 뻥을 쳐서 안 읽었어"


그랬다. 남편의 글을 읽다 보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었다.

딸은 아빠의 일기 중 한 부분을 큰 소리로 읽었다.


"파스퇴르 분유는 신생아용이 없었고, 회사가 어려워져 어쩌고 저쩌고..."

"엄마! 맞아?"

"파스퇴르 분유를 먹인 건 맞는데 신생아용이 없었다고? 에이 신생아 때부터 그 분유 먹였거든"

"엄마 물어봐"

"응? 뭘? 그걸? 누구한테?"

"엄마가 맨날 물어보는 애 있잖아!"

"챗GPT?"

"응, 내가 물어볼게"


"파스퇴르 분유는 신생아용이 없었고, 1998년 무렵 경영상 위기가 와 어쩌고 저쩌고..."

"뭐야? 아빠 말이 다 맞네! 엄마가 틀렸네"


정말 깜짝 놀랐다.

남편의 기록이 조금도 사실과 다르지 않았다.

그걸 증명해 낸 딸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구체적으로 쓰인 내용에 늘 못 믿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남편이 쓴 구체적인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었다.


"엄마, 엄마가 아빠 일기를 책으로 내줘"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너무 믿을 수가 없어서..."

"아빠가 다 맞잖아!"

"그러네! 생각해 볼게"


남편이 기록해 놓은 일기와 나의 이야기를 함께 풀면 한 사건을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과 내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으로 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빠가 글을 잘 써"

"엄마도 그건 알아"


남편의 육아일기는 나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특별하고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 속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한 말이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에이 거짓말!"


이젠 딸이 증명해 낸 덕에 이 말도 힘을 잃어버렸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술로 정신없이 살던 때 쓴 일기인데, 그래서 지금까지 읽어보지 않았던, 믿지 않았던 글인데 쓰던 순간의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한 휘갈겨 쓴 글이 모두 사실이라니...

일기마다 그려 놓은 그림까지 다시 제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꿈이 많았을 한 남자가 보였다.

딸의 기억 속 아빠의 모습이 나쁘지만은 않아서 감사했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 부녀의 시간이 있었다.


"2000년대의 아빠가 2020년대의 아빠를 이기는 거야!"


초등학교 때 아빠와의 추억이 너무 소중해 소중한 그 기억들이 아빠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모두 이겨준다는 딸의 말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도 했다가 먹먹하게도 했다.


정신없이 신생아모드로 살아가던 남편을 향한 실망과 좌절을

"아빠는 지금 아픈 거잖아!" 하며 희망으로 바꾼 딸이었다.


끊어내지 못하고 휘둘리며 쳇바퀴 돌듯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남편의 알콜릭을 향해

"아빤 참 성실해! 뭘 하든 아빤 꾸준하게 할 거야!" 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도 딸이었다.


딸의 말에 힌트를 얻어 희망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었다.

'맞아! 이 사람은 아픈 거야!'

'맞아! 이 사람은 성실해!'


아픈 것은 낫게 하면 되는 거였다.

습관은 바꾸면 된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뀐 것이!

남편을 향한 기도가 바뀐 것이!


그때부터였다!

남편이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로 하루를 열었다.

살아가는 모습 어떤 것도 전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딱 하나! 우린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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