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불러 봤어!

아빠가 엄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야?

by 어모쌤 손정화

연재를 하던 글!

한동안 쓰지 못했다.

남편이 없으니 글도 없었다.

남편이 나와 딸을 두고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남편이 달라졌다고 희망을 가지고 쓰던 글을 이어 쓸 수가 없었다.

그 달라짐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음을 알았다.

준비가 있었던 그의 삶의 끝이 감사하다.

그의 삶의 끝은 참 아름다웠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처음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암이 아니라도 기대 수명이 2년이라고 했다.

흘려들었던 말!

가볍게 듣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말이었다.

전혀 잊히지 않았지만!


의사가 말한 2년을 꼬박 채우고 약속이나 한 듯이 떠났다.

1년은 술을 끊으며 죽음을 준비하고

1년은 잃어버렸던 평범한 삶을 되찾으며 다음을 준비했다.

기적 같은 2년이었다.

알코올로 망가진 그의 뇌는 다시 살아났다.

막걸리로 망가진 생활도 되찾았다.

남편을 다시 찾았고, 아빠가 되어 살았다.


암이라고 하니 다들 혀를 차며 걱정했지만 우린 달랐다.

암이지만 삶은 더 건강해졌었다.

오래간만에 행복했다.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하루하루가 내게 주어졌었다.

삶의 끝에서 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애도할 수 있는 남편, 아빠가 되어 준 것 그 이상이었다.


남편 병간호를 하며 소화기내과 병실을 드나들다 보니 간호사실 옆의 집중치료실에서 들리는 소리가 늘 같았다.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신음 소리!

오며 가며 문이 열린 틈으로 보이는 모습은 몸에는 주렁주렁 관이 연결되어 있고, 남산만 한 배가 가려줄 옷도 이불도 없다는 듯이 먼저 보였다. 배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도 볼 수도 없었다.

내 남편의 마지막 모습도 저러려나 하며 마음을 졸였다.


"하나님! 우리 임집사 하늘나라 갈 때에는 배도 하나도 안 나오고, 아파하며 신음하지도 않고, 다리도 붓지 말고, 몸에 주렁주렁 관도 꽂지 않고 편안한 모습으로 가게 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하늘나라 가는 우리 임집사 되게 해 주세요. 보고 싶은 사람 다 보고, 찬송가 크게 틀어 놓고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기도해 주시며 우리 딸이랑 제가 사랑한다 사랑했다 사랑할 거라고 꼭 안아줄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 임집사의 하늘나라 가는 길이 저 천국을 소망하며 기쁘고 행복한 여정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어디에서 저 많은 혈변이 나오는 걸까?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계속되었던 혈변을 한 순간에 멈춰주시기도 하셨고, 갑자기 떨어진 혈압을 다시 오르게도 해주셨다.

마지막 간성혼수 증상이 시작되기 전 의사가 말했다.

"의식 있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가실 수 있게 해 드리세요"


임종 면회가 시작되었다.

연애 시절 우리 커플과 거의 매일 만나 놀았던 교회 오빠들을 시작으로 그의 입장에서 본가와 처가 식구들, 교회 집사님들, 목사님 내외분, 언니 오빠들!

그가 가기 전 주말 금, 토요일을 힘을 내 사람들을 만났다.

한 번도 아프다고 한 적 없었고, 보기에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이 사람이 임종 면회라니!

오래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는 교회 옛 언니, 오빠들은 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냐면서 나를 나무랐다.

마지막 언니 오빠 커플이 그를 만나고 갔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간성혼수 증상으로 횡설수설할 상황이었는데 그가 힘을 내고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의 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복수 천자를 한 적 없었는데 복수 천자를 하기 위해 꽂은 관이 그를 아프게 했다.

"여보!"

"응"

"배 아파"

"응"

병실 밖에서 들으면 계속 되풀이되는 영상이라도 틀어 놓았나 싶을 우리의 대화가 밤을 넘겼다.

마약성 진통제로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다.


어느 순간!

그가 깊은숨을 몰아 쉬고 내 쉬고 있었다.

이젠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술 취해 잠들어 있던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칭얼대며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에요. 의식이 없어도 아프면 얼굴을 찌푸리는데 환자분은 아프지 않으신 것 같아요"

혹시 아픈데 의식이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해서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의사의 말에 다행이고 감사했다.


목에서 심하게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여보! 숨 쉬기 편하게 우리 가래 빼낼까요?"

지난밤 여러 차례 가래를 빼내는 고통에 시달린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젠 말을 못 해 고개로 끄덕여보라고 했다.

"빼"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더 큰 소리로 "빼"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그가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얼마나 힘들면 그 고통스러운 시술을 스스로 해달라고 할까?


그의 숨소리가 바뀐 것을 느꼈다.

이젠 가느다랗고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알렸다.

간호사 여럿이 와서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더니 바쁘게 움직였다.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임종실로 가기로 했는데...

임종실에서 딸이랑 마지막 며칠 마음껏 지내다가 보내주기로 했는데...

그를 붙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임집사 혈압 정상으로 되돌려주세요"


승압제 같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사전에 동의를 해 놓았었다.

'아! 이래서 승압제를 쓰는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간호사가 수액을 여러 팩 연결하더니 손으로 쥐어짜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내가 너무 간절해 보였을까?

혈압이 다시 안정적인 숫자가 되었다.

임종실 준비되기 전까지 1인실에서 있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찬송가를 귓가에 들려주고,

목사님과 사모님께 전화해 오셔서 기도해 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임종실이 준비가 되었다.

그가 누운 침대 그대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딸과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며 운다.

임종실에 마련된 침대로 남편을 들어 옮긴 순간!

그의 혈압은 또다시 곤두박질쳤다.


목사님께서 그의 손을 잡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나는 알았다.

그가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간 것을!

"띠" 하며 남편의 심장이 멈추었다는 소리가 들린 순간 딸은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리 와! 우리가 안 하기로 한 것이 바로 이거야!"

딸이 아빠의 가는 길을 못 볼까 봐 한 말이었는데 딸은 엄마의 단호한 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남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물었다.

"엄마! 아빠가 엄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야?"


"여보"

"응"

"그냥 불러봤어"

"응? 뭐라고? 그냥 불러봤다고?"


당연히 배 아파라고 할 줄 알았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그냥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렸고, 불러 뭐라고 한 것 같아서 돼 물었었다.

그 말을 끝으로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게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칭얼대듯이 배 아프다고 한 번만 더 해주지!

아무 말이 없던, 깊은숨만 몰아쉬고 내 쉬는 그를 보며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그가 그리웠다.


그는 이제 없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별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간 사람!

천국 소망을 주고 간 사람!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남편처럼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아름다운 죽음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이제 막걸리, 매실 그리고의 연재를 맺는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지만

쓰지 않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의 떠남으로 새로운 글의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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