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고등어 하나 제대로 구울 줄 모르냐?
남들이 살림을 할 때 나는 살림을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퇴근해서 오면 딸을 만나 동네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저녁 식사를 하던가
집에서 오늘은 뭘 먹을까? 하며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퇴근한 나를 만난 딸이 "엄마 밥 시켜줘"라고 말한 적도 있었으니까 정말 살림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다.
딸은 이제 내가 한 가정을 꾸렸던 때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 사이 나는 살림을 시작했다. 때가 되면 식탁에 올릴 반찬을 걱정하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내 생활을 조절하기도 한다. 유튜브나 TV 프로그램에서 요리 레시피가 나오면 눈여겨보기도 한다.
딸이 중학교 때였다.
"엄마는 내가 하는 말 안 듣잖아! 엄마는 내 말 듣지도 않으면서"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딸이 그동안 한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는 걸 알았다.
딸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들려온 말이 있었다
"엄마 다희네 집에 갔는데 다희가 엄마손 맛이 최고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엄마손 맛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딸의 이 한마디에 나는 살림을 시작했다.
안 하던 걸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는 사람도 그걸 바라보는 사람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침을 차려주겠다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딸은 아침을 먹어 버릇하지 않아서인지 그냥 가버렸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밥보다는 잠을 택했다.
이상하기는 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되돌아오는 피드백과 상관없이 나의 어설픈 살림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키울 때에는 별 불편함이 없던 나의 살림 솜씨가 부모님 병간호를 하면서는 영 불편해졌다.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앞서고 늘 결과는 빈수레가 요란하다.
그저 마음 한 숟가락 넣고, 정성 한 숟가락 넣는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다.
오글거리는 이 표현을 내가 쓰게 될 줄이야!
어제는 병원에 입원하신 엄마 대신 아빠께 고등어를 구워드렸다.
양면으로 뒤집으면서 구울 수 있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등어를 그 속에 가두어 뒤집어가며 익혔다.
분명 다 익었다고 생각하고 접시에 올려드렸는데 아빠는 "벌써 익었어?"라고 물으시고 접시에 놓인 고등어를 보시더니 "이제껏 살림을 했는데 고등어 하나 구울 줄 모르냐? 다시 구워"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다. "어? 아빠 다 익었는데? 익었어요"라고 내가 말하니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시며 "다시 구워! 바짝 구워야지! 팬 이리 가지고 와" 하시며 접시를 내쪽으로 밀어내셨다. 분명 고등어는 달궈진 팬 안에서 노릇노릇 갈색 빛을 내며 구워져 나왔는데 아빠는 그 색깔보다 더 진한 노릇노릇을 원하시는 것 같았다.
아빠 말을 들어드리려고 팬을 들었다. 두 팬이 겹쳐지는 부분으로 기름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서 우물쭈물했다. 아빠는 다시 한번 "팬 이리 가지고 와" 하시며 이번에는 큰 소리로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셨다. 아마도 50 넘은 딸이 고등어를 제대로 못 구워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나신 것 같았다. 나도 지지 않으려고 "팬에서 기름이 흘러서 그래요"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고등어 접시를 들고 가스레인지 앞으로 갔다. 날은 덥고 불 앞이라 뜨거운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아빠의 시선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자격지심이리라 생각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냥 드시는 분이 조금 더 바짝 익혀달라는 주문을 하신 것인데 내가 내 자격지심에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리라... 생각하며 얼른 고등어가 익어서 아빠가 식사를 마치시면 빨리 설거지를 하고 집을 나오고만 싶었다.
그렇게 자신 넘치던 나는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쭈글쭈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펴지지 않았다.
나이 50이 넘었는데도 부모의 말은 그렇다!
"여태 고등어 하나 제대로 구울 줄 모르냐?"
아빠가 나에게 한 말이 눈덩이처럼 커지려고 했다.
고등어만 못 구우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내가 제대로 못 하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살면서 아빠 기대에 못 미쳐서 들었던 말들이 다시 하나 둘 올라왔다
다음 식사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는 반찬으로 차려드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