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모쌤 손정화 Jul 08. 2022

엄마니까

비 오는 날에는 김치부침개!

딸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의 출근길은 자고 있는 딸을 깨워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키는 시간이었고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 너머에 있는 딸을 준비시켰다.

"어 일어났어? 얼른 세수하고 엄마가 꺼내 놓은 옷 입고 가 알았지?"

퇴근 후 만난 딸은 아침에 입으라고 꺼내 놓은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는데 아직도 털옷을 입고 있기도 했고, 터무니없이 얇은 티 조각을 입고 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너무 더워 땀을 삐질삐질 꼬질꼬질 이었고, 어떤 날은 너무 추워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어렸던 걸까? 아니면 철이 없었던 걸까?

인간이 덜 된 사람이 엄마가 되어 그런 걸까?

한 번도 직장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엄마로서의 나는 없고 그냥 내가 있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땐 돈을 벌려고 일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내가 좋아서, 습관처럼 직장을 다녔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리지도 않았는데도 엄마니까!라는 말을 몰랐다.

엄마니까 포기하고, 엄마니까 희생하고, 엄마니까 해주고...


우리 엄마는 지금도 엄마니까 해 주시는 것이 많다.

엄마니까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엄마니까 오이지 무쳤다, 겉절이 담갔다 가져다 먹어라 하시고,

엄마니까 괜찮다 하시고, 엄마니까 참으시고...

엄마니까 6남매 도시락을 많을 때에는 12개씩 아침마다 싸시고,

엄마니까 비 오는 날이면 김치전을 하시고,

엄마니까 고된 가게 일 하시고 들어오셔서 과일 깎아 주시고, 계란빵 해주시고...


이젠 엄마니까 씩씩하게 병을 이겨내고 계신다.


나도 그 사이 엄마니까를 장착했다.

엄마니까 딸에게 매일 톡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

나의 엄마니까는 턱 없이 부족하다.

딸이 어느 날 전화 통화 중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번에 나 가면 김치전 해주라"

"김치전?"

"응 사람들은 김치전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게 없더라고"


맞다 나도 김치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비가 오면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유독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쩌면 김치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이면 마루 끝에 앉아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던 뒤편에는 늘 우리 엄마의 '엄마니까'가 있었다. 빗소리를 닮은 김치전 지지는 소리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서며 "엄마! 오늘 비 와서 김치부침개 했겠네?" 하며 나의 믿음을 확인했다. 그러면 엄마는 늘 "그럼 했지" 하시며 좋아하셨다.


사실 물을 필요 없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시니까 물어보았고 내가 좋아하니까 엄마가 대답해주셨다.


엄마니까!

나는 요즘 엄마께 이 말을 한번 더 강요하고 있다.

엄마니까 이겨내셔야 해요!

엄마! 자식들은 엄마를 보고 배워 삶을 살아요! 엄마가 아플 때 어떻게 이겨내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셔야 해요. 엄마니까! 엄마 보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요!

엄마 사랑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철없는 엄마, 부족한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