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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Jul 19. 2022

흑염소로 보양식 한 날

기름 양념장, 식초 양념장

"너도 흑염소 먹으러 갈래?"

언니에게서 온 톡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나도 가겠노라고 답을 했다.

여름 보양식으로, 암투병하시는 부모님 보양식으로 동생이 흑염소를 드시게 하자고 의견을 내어 언니와 나, 동생 그리고 부모님 이렇게 다섯이 만나기로 했다.

퇴근과 동시에 약속 장소를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해서 늦지 않게 찾아갔다.

흑염소 요리가 전문인 식당에는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동생과 나 둘 뿐이었고, 곧 언니와 부모님이 합류하였어도 우리 가족뿐이었다.


"내가 처음 먹어보니 먹는 방법 좀 알려주쇼"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아빠가 부탁하듯이 물어보셨다.

그 여자분은 양념장 그릇을 내밀며 "기름을 넣어서 드셔도 되고, 식초를 넣으셔서 드셔도 돼요"라고 알려주었다.



아빠는 평소 밥상에서도 초고추장을 항상 곁에 두시고 본인 입맛에 맞지 않다 싶으면 초고추장을 조금 짜서 함께 잡수셨다. 식초라는 소리만 들리셨는지 아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시고 식초를 콸콸 부으셨다.

'너무 많이 넣으셨는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식초파와 기름파로 나뉘어 각자 취향대로 양념장에 넣어 버무렸다.

엄마는 기름을 넣으셨고 딸들은 셋 다 식초를 넣었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을 때!

아빠의 음식 평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지난번 고등어 사건처럼 이번에는 식당을 향한 가감 없는 솔직한 맛 평이었다. 너무 뜨겁고, 맵고, 시기만 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우리가 들리게 한 번, 종업원이 들리게 한 번, 사장에게 들리게 한 번! 음식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식초 넣어 먹으라고 하는 거라시며 본인이 선택하셔 놓고 방법을 알려준 여자분에게 대놓고 불평을 시작하셨다.

아빠의 불평을 멈춰지게 할 방법은 양념장을 재빠르게 한 접시 더 가져와서 기름을 넣어드리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 기름을 선택한 엄마께 언니가 식초 넣은 장도 한번 드셔 보시라며 양념장을 하나 더 달라했었다. 혹시 엄마에게만 그렇게 해서 샘 부리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다 먹었어" 하시면서도 내가 가져온 양념장을 흐뭇하게 보시는 것만 같아 보였다.

"이제 맛이 있네"라고 하시며 얼굴에 미소가 번지셨다.

'정말 애기가 되셨네' 우리 셋은 아마도 모두 이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전골냄비에 들어있던 야채와 고기를 어느 정도 다 먹었을 때! 우리는 밥 두 공기를 볶아달라고 했다.

그 여자분은 우리가 남긴 국물을 각자 앞에 놓여 있는 개인 접시에 덜어 놓고 전골냄비를 가지고 주방으로 갔다.

조금 기다리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볶음밥이 왔다.

언니가 얼른 한 그릇 퍼서 아빠게 드렸다.

"이야 맛있다" 다행히 볶음밥은 아빠의 입맛에 합격점을 받았다.

아빠에게 합격점 받은 볶음밥을 칭찬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 걸어가시는 아빠와 엄마의 발걸음이 닮았다.

젊었을 때에는 아빠가 엄마를 두고 너무 빨리 걸어가버리셔서 많이 서운했었다고 하셨었는데

아빠의 보폭이 눈에 띄게 좁아지셨다. 다행히 종종걸음이 아님을 감사했다.

약간 먼저 가시면서 뒤를 돌아보시며 엄마가 뒤를 따라오고 계시는지 확인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빨리 아빠에게 가서 아빠와 함께 걸었다.


자랄 때에는 아빠는 그냥 아빠였다.

그런데 요즘 내 눈에 비치는 아빠는 사람이다.

매우면 맵다, 맛없으면 맛없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샘나는 것 있으면 샘 내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갖고 싶다 하고, 외로우면 외로움을 나타내고, 속상하면 속상함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경 쓰이고,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 위하게 된다.

아빠도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요즘 우리는 아빠 마음을 살핀다. 그러다 보니 서운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해가 안 되어 팽 돌아서버리기도 하지만 자식과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마치 힘들게 하는 친구 살피듯, 아빠를 살피게 된다.

샘 많으신 것도 그래서 알게 되었다. 샘 많은 우리 아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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