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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Nov 14. 2022

딸아 엄마 좀 칭찬해 줘~

딸바라기 엄마의 추억 속 딸의 모습

전에는 딸이 엄마인 나를 칭찬해주는 일이 많았다.

"엄마 엄마는 왜 동생을 낳지 않았어? 나 같은 아이를 많이 키워냈어야지!"

"엄마 엄마는 이 시대의 롤 모델이야" 

이젠 자신이 이런 말을 한 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딸을 보며...

참 딸 어릴 때가 그립다. 


딸이 고등학생 때였다.

"엄마 내 친구 중에 별(가칭)이 기억하지? 별이한테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요즘 너무 힘들어하거든 그래서 내가 별이한테 우리 엄마 소개해줄까? 했어"

이 말을 딸에게 들었을 때! 진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자신이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엄마가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것처럼 친구의 동생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했다는 말을 듣고... 

그 후로 이 이야기는 나의 단골 멘트가 되어버릴 정도로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딸의 엄마를 향한 지지였다.


가끔 딸의 칭찬이 그리워진다. 

다 커버려서 거의 모든 일의 결정을 스스로 하고, 책임도 스스로 지는 나이가 된 딸을 보며 

이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건가?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나에게 해주시는 것이 많은데 난 딸에게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김치를 담가 주지도 않지만 담가줘도 먹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가끔 집에 온 딸에게 따뜻한 집밥을 먹이고 싶지만 그것도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딸은 오히려 집에 오면 피자도 먹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다고 한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겠거니 하며 나는 못 이기는 척 배민을 부른다. 


딸이 세 살 때 내가 근무한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녔다.

돌이 지나자마자 시댁에서 데리고 왔으니까 두 살 때부터다. 

굳이 세 살 때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 기억 속 딸 세 살 때의 일들이 유독 많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 가파른 언덕길, 내려올 때에는 비탈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우리 세 식구 나란히 손 잡고 잘 다녔다. 그 어린 딸과 우리는 369를 했다. 딸이 게임의 룰을 모르니 369를 10,6,9라는 게임으로 변형해서 했는데 노래는 369 노래를 부르고 게임은 눈치게임을 했다.

"십육구십육구십육구십육구"

"1"

"2"

"3"

어린 딸이 이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마지막으로 3을 말하면 인디언밥을 해주는 거다. 

우리는 길에서 아빠가 걸렸든, 엄마가 걸렸든, 어린 딸이 걸렸든 "인디언 밥 오~ 예!"를 했다. 


나는 지금까지 딸의 옷을 내 마음대로 사서 입힌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린이집에서 퇴근하는 길에 아울렛 같은 매장이 있었는데 퇴근하며 손 잡고 같이 들어가 나는 성인 여성복 매장으로 딸은 곧장 유아동복 매장으로 각자 가서 자신이 입을 옷을 골랐다. 

다행히 성인 여성복 매장에서 유아동복 매장을 활기 치며 돌아다니는 딸이 한눈에 보이는 구조였다. 

내 옷을 다 고르고 나서 유아동복 매장으로 가서 딸을 만나면 항상 점원이 이랬다 

"손님 딸이에요?"

딸만 놔두고 옷 고르러 간 엄마가 이상하다는 말투다! 

딸과 나는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네 살 때인가 종로에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그 시기에 내 친구들은 아무도 기혼자가 없었다. 나만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다. 

딸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 갔다. 

우리는 종로 3가 맥도널드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주문하고 올라와 한참 먹고 있을 때 딸이 다른 때처럼 음료수 리필 심부름을 하고 싶어 했다. 

평소 아빠와 함께 갔던 롯데리아에서는 음료를 리필해주었는데 딸이 자신의 얼굴보다 더 큰 컵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리필을 받아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여워 우리는 음료를 아주 빠르게 비우기 일쑤였다. 

이날도 딸은 음료를 리필해 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딸에게 말했다.

"이 계단 내려가면 저~기 보이지? 저기에 가서 언니한테 사이다 더 주세요 하면 돼"

롯데리아는 리필을 해 주지만 맥도널드는 리필을 해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딸을 믿어보기로 했었다. 


딸은 계단을 내려가 내가 알려준 곳으로 가서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상판에 가지고 간 음료컵을 올려놓으며 

"사이다 더 주세요"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어디에서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컵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요렇게 상체를 앞으로 수그려 아래를 보는 모습이 우리들의 눈에 포착이 되는 순간 모두 "흐흐흐" "하하하" "크크크" 입을 막고 웃었다. 엄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의 엄마를 찾겠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우리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여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딸은 아주 큰 일을 해냈다는 듯이 음료수 컵을 들고 당당하게 계단을 올라와 우리가 앉아있는 곳으로 왔다. 

"엄마 언니가 이제 오지 말래"

딸의 말과 동시에 우리는 또 한 번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다섯 살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가족이 산책을 나갔는데 딸이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다. 

딸은 언니 오빠들만 붙잡고 오르는 놀이기구를 자신도 해보고 싶다고 아직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부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나 저거 해보고 싶어"라고 했다.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어린이대공원으로 나온 나는 피곤하기도 했지만 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아주 빠르게 생각했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이는 많은 아이들! 

"네가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스스로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스스로 하는 거야! 오늘은 엄마 말고 저기 저기에 있는 언니들 중에서 한 명한테 언니 나 좀 도와줘라고 해봐 아마 언니가 도와줄 거야"


딸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놀이기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딸이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며 지켜보기로 하고 돗자리를 꺼내어 펼치고 자리를 잡고 앉아 딸을 지켜보기로 했다. 

딸은 내가 알려준 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한 언니 옆으로 가더니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보이더니 순간 웃음이 픽! 나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딸이 그 언니의 손을 잡고 놀이기구에 오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오늘 그곳에서 처음 본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놀이기구에 올라간 딸이 너무나 기특해 엉덩이가 들썩인 나는 바로 일어나 딸에게 가까이 가고 있었는데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고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다시 도움을 청하는 딸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언니에게! 


어느 순간 그 놀이기구의 모든 언니, 오빠들이 딸을 데리고 놀기 시작했다. 

데리고 놀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듯싶다. 

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서 줄 서는 언니, 오빠들! 


딸의 어린 시절 철없었던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딸의 자립심을 키워주고 있었고 딸은 친구들의 엄마와 다른 방식의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리가 크면서부터는 엄마를 칭찬하는 말을 했다. 엄마 듣기 좋으라고... 

오늘 갑자기 그렇게 칭찬해주던 딸이 그립다. 

이젠 다 커서 그 시절을 잊어버렸을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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