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닌 게 신기하네!
어린이집 교사 시절 나는 주임교사였다.
어느 순간부터 위통이 심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위가 아픈 나날이 계속되었었다.
너무 아파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았었다.
게다가 위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그냥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는 것과는 다르니 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처음 진료를 받을 때에는 위 내시경을 찍지 않고 위 사진을 찍었다.
종이컵에 무슨 석고물 같은 것을 한 컵 주며 마시라고 했었다. 그 석고물 같은 것을 먹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위 사진 찍는 것은 그저 내가 위가 아픈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으니 위통에 대한 예의 정도였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위가 아픈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위 내시경을 찍어보기로 하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갔다. 그땐 진료 소견서도 없이 어떻게 상위 병원에 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죽을 것 같이 아프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멀쩡해지는 이상한 병이었다. 특히 식사 한두 시간 후에 많이 아팠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어떤 날들은 아프고 어떤 날들은 아프지 않았다. 아플 땐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이 아프고 괜찮아지면 너무나도 평온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상위 병원은커녕 병원 진료도 자주 받지 않았던 나는 진료 예약을 하면 바로 그날 내시경을 받을 수 있고, 검사 결과도 바로 들을 수 있는지 알았다. 진료는 어찌어찌 빠르게 봤는데 검사 날짜를 따로 정해주었다. 한 달 정도를 기다려 검사를 했는데 또 한 달 이상 기다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 했다. 아플 때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프지 않을 때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의사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하며 내 위에는 조금의 이상도 없다는 기쁘지만 허무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신경성이신 것 같습니다"
의사의 이 말은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프다고 호소한 나를 멋쩍게 만들었다. 엄마를 비롯해 가족들은 '그럼 네가 그렇지!' 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딸이, 동생이 너무나 아파하니 걱정이 가득하셨다가 아무렇지 않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과 표정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아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다행이었는데 또 아무렇지 않아 속상했다.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보게 된 어느 여름! 교회 수련회!
그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위는 아픔을 멈췄다.
신경성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맞다는 듯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면서 그동안 신경 쓰던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내 위는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내시경을 받았을 때 조금 보였던 증상의 원인이 되었던 소견마저 없어졌는지 의사는 "아주 깨끗하네요"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동안 2년에 또는 4년에 한 번씩 국가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위 내시경을 받았다. 그때마다 경미한 위염 소견! 즉, 나를 아프게 했던 자국이 남아 그 자국이 보인다는 소견뿐 내 위는 평온했다.
나는 오늘 저녁 먹고 친정으로 달려갔다.
"엄마 위 썩썩 거릴 때 먹는 약 있어?"
"그게 뭔데? 위가 아파?"
"응 어제 누굴 좀 미워했더니 속이 뒤집어졌네! 쭉 짜 먹는 약! 그거 없어?"
"있어"
"엄마한테 있을 것 같아서 왔지!"
"누굴 그렇게 미워했길래 속이 뒤집어졌어?"
"응! 어제 오래간만에 직장 생활하는 기분이 들더라고!"
오늘 갑자기 내 위가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제 퇴근길에 지인에게 내가 오늘 오래간만에 직장에 다니는 기분이 충만하다며 폭풍 메시지를 보냈을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인정한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내 위는 이제부터 아플 거라고 신호를 보냈다. 어쩌면 내가 계획했는지도 모르겠다.
'위가 또 아프겠네!'
하루 종일 언제 아플 건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렸는지 저녁 식사 후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어제 바로 알아차리고 내 위를 아프게 할 그것을 빠르게 거둬들였는데도 발동해서 긁적거렸는지 아픔이 건너 뛰어가지 않았다. 많이 아팠다. 엄청 후회했다.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을!
아니 쫓아내던 감정을 안 쫓아낸 것을! 오히려 오라 오라 했던 것을!
엄마가 주신 약을 받자마자 쭉쭉 짜 먹었다.
이제 곧 아픔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벌써 위까지 갔는지 조금씩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스쳤다.
'어? 이상하네!'
사실 어제 나에게 들어왔다가 나간 감정은 그리 세지 않았는데도 다른 때보다 내 위가 신호를 보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남편의 술 때문에 맘고생을 했는데 난 남편을 하나도 미워하지 않았었나 보다.
숱한 밤을 인상을 쓰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미간 사이에 생긴 주름을 보며 '아! 나 또 얼굴 찌푸리고 잤나 봐!' 한 날들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데 한 번도 아픈 적 없었다.
'신기하네'
아팠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남편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 적이 없다! 하하하
맞다! 그때도 지금도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내가 미워한 건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