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국부랑자 Oct 14. 2018

빠지고 싶은 강, 모젤(1)

와인, 화이트 와인 그리고 또 리슬링 여행기

독일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큰 비중은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코블렌츠다. 이 코블렌츠를 이 책자들에서는 "두물머리" 즉 두 강이 머리를 맞대고 만나는 곳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곳이다. 나는 이렇게 서술되는 코블렌츠를 지나서 모젤강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탔다.


모젤이란 단어는 누군가에겐 생소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설렘 그 자체다. 강 자체로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그 강을 둘러싼 거대한 포도밭은 독일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단어다. 나 또한 이 단어에 홀려 무작정 기차표를 끊고 다음 날 바로 출발했다.


코블렌츠에서 베른카스텔쿠에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쁜 마을 코헴(cochem)


그렇게 모젤의 여러 마을들을 지나고 내가 사랑하는 와인 밭이 있는 베른카스텔쿠에스(Bernkastelkues)로 향했다.


베른카스텔쿠에스로의 여행은 그동안의 숱한 여행들과는 많이 달랐다. 여태껏 했었던 여행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며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도 있었고 선택 장애를 겪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많다. 하기 싫은 것들도 때론 "필수코스"라는 이름의 의무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익히 내가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렇다. 난 와인을 사랑한다. 세상의 모든 술을 좋아하지만 사케와 와인을 사랑한다. 특히 와인 속에는 스토리와 역사, 지리, 와인메이커의 피땀과 가치관 등이 모두 담겨있다. 더군다나 이 와인은 그저 포도만을 재료로 사용한다. 벨기에 맥주처럼 오렌지 껍질을 넣고, 고수를 넣고 다른 무언가를 넣어 그 향이나 맛을 첨가하지 않는다. 오롯이 포도와 자연이 선사하는 기후 그리고 인간의 노력만이 그 결실을 빚어낸다. 이 와인을 마시고 있노라면 나 같은 범인도 이 와인처럼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래서 난 이 여행을 감행했고 우여곡절 끝에(대중교통의 지옥 끝에)

도착했다.


세면도구를 깜박해서 사기 위해 독일의 체인마트 중 하나인 에데카(Edeka)로 향했다. 정류장 바로 앞에 떡하니 있어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날 반겨준 것은 모젤의 페더바이서(Federweisser)였다. 앞서 글에서 소개한 페더바이서가 있는데 그 생산지가 "당연히도" 모젤인 것이다. 이런 게 현지라는 걸까? 단순히 슈퍼에서 페더 바이서 한병 발견했을 뿐이데 내 몸에 악마가 들어왔다.


Mosel~의 페더바이서


물론 사진 않았다. 앞으로 맛봐야 할 와인들이 많으니까 잠시 너와의 상봉은 미뤄보자라고 했지만 결국 마시지 못했다. 마셔야 할 와인에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른카스텔쿠에스에 방문하고 그 첫 방문지로 슈퍼를 택하신 분들께 고한다. 페더바이서 한 모금과 베른카스텔의 와인들을 바꾸지 말라. 어차피 그 한 모금은 한 병이 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여정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 유혹을 견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한 풍경을 맞이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밭인 Doctor였다. 눈이 내린 날 오후의 사진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출처 : https://www.thanisch.com/berncasteler-doctor/


바로 이 사진인데 다른 곳은 다 눈으로 덮여있지만 저 가운데 밭만은 눈이 녹아있다. 이 것은 일조량이 많은 밭임을 의미하고 독일 같이 추운 기후의 생산지로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쨌건 나는 이 곳에 발을 디뎠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비록 저기서 난 와인은 비싸서 마시지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했다.


베른카스텔 Doctor 밭


이 다리를 지나서 저 밭이 보이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한국에서도 유명한 모젤 생산자인 Dr.Loosen이 보인다. 사실 한 1~2km는 가야 한다. 자전거를 빌려서 가면 정말 편하고 빨리 갈 수 있지만 난 일단 걸어가 보았다. 그 정취를 하나하나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난 Weingut Dr.Loosen 앞에서 감격하고 있었고 약속시간까지 1시간이 남아서 정말 오랫동안 그 주변을 맴돌고 앉아서 포도밭을 감상했다.

포도 수확하는 모습


그렇게 약속 시간이 되어 들어간 Dr.Loosen의 와인 시음장. 매니저가 열심히 레드 슬레이트와 블루 슬레이트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따라주는 와인이 맛있다. 내가 모젤의 심장부에 왔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좋은 와인이지만 평범한 와인들... 내가 이걸 마시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었다. 그때 난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야 했다. 좋은 와인을 마시려면 나도 와인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난 리저브(reserve)와 일반 G.G(Grossees Gewaechs : dry와인의 그랑크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의 차이를 물었고 오크 터치가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자 가져온 Dr.Loosen Ürziger Würzgarten reserve 2013. 크리미한 질감과 화려한 향 그 모든 것이 표현해내는 아름다움. Elegant 하다는 표현뿐이었다. 같이 시음한 모두가 맛있다!!! 고 외쳤고 결국 다들 이 와인만 사갔다. 물론 나도 1병. 난 가난한 유학생이니까 다른 아저씨처럼 12병씩 살 수 없었다. 뭐 산다한들 뚜벅이 신세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말이다.

Dr.Loosen 시음장에서 발견한 좋은 리슬링


그렇게 난 모젤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왜냐면 이미 비수기라서 그런 건지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거나 그저 그런 피자집, 독일 음식집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베른카스텔에서 뭔가 맛있고 근사한 식당은 기대하진 말아라. 그 대신 평생에 잊지 못할 리슬링의 향연은 보장한다. 그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모젤강은 가 볼 가치가 있다.


난 결국 모젤에 왔고 그곳에서 보물인 리슬링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내 첫날은 충분했다. 이미 모젤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뭘 해야만 행복한 것 아니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독일 여행이 酒는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