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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문 May 01. 2020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기회의 땅' 하와이로 떠난 조선의 여성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 이 시기에 사진을 통해 신랑이 될 남자의 얼굴만 확인하고 부푼 꿈을 안은 채 하와이로 떠난 여성들이 있었다. 대부분 10대~20대에 불과했던 이들의 명칭은 바로 ‘사진 신부’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사진 신부를 자처함으로써 당시 재외 동포들과 함께 하와이 이민 1세대가 되었던 한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어린 소녀들이 낯선 타지에서 엄마가 되고,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통해 가슴 속 따뜻함과 뭉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경계에 걸쳐져 있는 이방인의 삶


 책의 저자 이금이는 1984년 등단 이후 1990년대, 2000년대까지 거의 매년 작품을 낼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 청소년 문학작가다. 평생을 어린이 청소년 문학을 쓰며 살아온 작가가 갑자기 성인본 장편소설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어느 날 재외 동포에 관한 책들을 보다 하와이 이주민들에 대한 자료와 함께 ‘사진 신부’를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부채와 양산, 꽃을 든 세 명의 여성이 찍힌 사진을 본 이후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간직해왔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그들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들은 하와이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다. 어떠한 경계에 걸쳐져 있는 이방인의 삶과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청소년의 삶이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는 저자의 시선이 숨어있다.



새로운 여성 가족 형태의 탄생,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했던 여성들의 연대


 작품을 이끌어가는 서술자는 조선에서 태어난 열여덟 살 소녀 버들이지만 사실상 버들과 그녀의 친구 홍주, 송화까지 세 여성이 주인공이다. 버들은 공부가 하고 싶었고, 홍주는 과부 딱지가 싫었고, 송화는 무당 손녀에 미친 여자의 딸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사는 조선에선 불가능했다. 결국 세 여성은 포와(하와이의 미국식 표현)에 가면 돈을 쓸어 담고, 조선에선 못하는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머나먼 미국 땅으로 떠난다.

 ‘기회의 땅’인 줄로만 알았던 하와이는 한인에겐 박했다. 상상과는 너무 달랐던 생활에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 계속되기 일쑤였다. 먹고 살기 힘든 건 조선이나 하와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한마을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던 버들은 나은 일자리를 위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조국은 일본이 점령하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마음 붙일 데도 없던 때, 버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위 이민 여성들과 조선에서 함께 온 친구 홍주와 송화뿐이었다.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해가며 이들의 우정은 점차 자매애로 발전한다. 저자는 사랑과 연대를 실천하며 새로운 여성 가족 형태를 이루는 인물들을 통해 기존의 ‘정상 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4인 가족 체제 외에 다양한 가족 형태가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들의 독립운동


 세계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왔음에도, 역사는 승리자,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남성의 시각으로 쓰여왔다. 한국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여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의 이름은 찾기 힘들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하와이 이주민 1세대’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를 떠올린다. 그들 가족의 일원이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갔을까? 사실 ‘사진 신부’는 단순히 팔려 가듯이 미국 땅으로 건너간 조선 여성들이 아니었다. 타국에서 차별받으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도 벅찼던 삶에서 독립운동 후원금을 내가며 조국까지 지켜내려고 애썼던 독립 운동가들이었다. 그러나 사진 신부와 그들의 공로에 대해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남성 중심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짙은 독립운동사에서 하와이 이주민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다룬 소설의 등장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이국적이고 신선한 ‘하와이’라는 배경과 저자 특유의 생동감 있는 표현 덕분에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처럼 굉장한 몰입감이 느껴진다. “‘하와이 이주민 1세대’의 시작을 함께 열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제목 또는 부제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인생의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온 모든 엄마들에게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에는 쓰이지 않은 한국 여성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거나,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가족도 없는 곳에서 서로를 보듬고 달래며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애쓰던 하와이 이주민 여성들은 서로의 가족이 되었다. 역사에 이름 한 줄 안 남을지 모르지만, 자식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세상까지 바꾸려 했던 여성의 서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비춰볼 수 있으며 미래로 나아가는 거울이 된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현재 시대에서 역사 속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린 자연스레 내게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바로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인생의 수없이 얄궂은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온 모든 어머니들의 인생과 책 속 인물들의 삶이 너무나도 닮아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누군가의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살아온 어머니들에게 ‘알로하’라는 정감 있는 인사를 건네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즐거운 장면, 가장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바닷가로 피크닉을 떠난 장면이다. 운전이 서툰 홍주의 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간 버들과 송화가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들은 파도같이 오르락내리락했던 지난 삶의 고비를 회상하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닥쳐올 삶의 파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파도 끝엔 찬란한 무지개가 있었으므로.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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