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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八字)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까?
by
포레스임
Jul 7. 2023
"자넨 결국 녹사수의를 또 걸칠 게야!"
결혼 후
얼마 안돼 강화읍, 할머니 동생분 포목점에 들렀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 내외가 인사를 드리고 고모와 같이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작은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심심헌데 만신할미 불러다 사주나 볼까?"
만신?....., 퇴역한 용한 무당을 만신이라고 했다. 고모님이 재밌겠다고 좋아라 하니, 바로 옆집이라며 한걸음에 데려오셨다.
너그러워 보이는 인상의 할머님이셨다.
젊은 날, 풍어제마다
불러 다니셨다고 도 한다. 나는 심드렁하니 작은 할머님 이웃 친구분쯤으로 생각했다.
젊어서 나는 종교도 없지만, 사주팔자니, 하는 것도 믿지 않았다. 오로지 믿을 것은 내가 하는 노력과 약간의
운 뿐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사람은 누구나 정해진 팔자대로 살다 간다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쨌든
그날의 만신할미는 말씀하셨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고모부터....., 당시 고모는 서울 노원구에서 아파트 상가 2층을 통째로 쓸 만큼, 큰 포목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비단이
장사하네!"
"네........., 어떤가요?"
사주를 대자마자, 비단장사를 거론하니 고모는 은근히 기가 죽었다.
"자넨 그거 얼마못가!"
"네......... 에......?
"
"좀 천한 장사를 해야 해! 그래야 오래가!"
"천한 장사면 어....... 떤... 거?"
"길거리
장사 있지....., 떡볶이, 어묵 그런 거...., 해야 돼!...., 아마 해 봤을걸?"
'족집게다!!!
'
고모는 원래 시장 모퉁이 노점으로 동대문에서 띠어온 옷을 팔았었다.
그러다 고모부가 종로의
큰 주단가게를 퇴직하고 시작한 포목점이 커져, 확장운영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만신할미의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사주를 대란다. 놀라는 고모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꺼림칙했다. 사주는 태어난 생년, 월, 일, 시를 말한다.
시(時)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고, 분위기상
안 보겠다는 말도 못 하고,.......
시(時)를
못 대니, 유난히 내 관상을 살핀다.
"다... 보여!"
'잉!..... 뭐가???'
"자네 철판떼기 장사하지!, 점원이야?"
'철판떼기? 가만 자동차도 철판..... 떼기....!!'
그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습게 생각했던 만신할미는 나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그 시절, 모 자동차회사 영업사원이던 나는 기막힌 점괘에 귀가 솔깃해졌다.
"근데?.. 할머님은
그런 게 어떻게 보여요?"
나는 자못 궁금해져 여쭤보았다.
"자네 면상에
쓰여있어!"
지나간 시간은 사람마다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는 말은 들어봤다. 그래서 나이 사십만 돼도,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녹사수의 다시
입을 게야! 입어봤지?"
무슨 말
을 하나 싶었다. 녹사수의는 또 뭔가? 홍포수의는 고관대작들이 입는 옷이라고 한다. 그리고 녹사수의는 하급관리의 옷이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찬찬히 생각해 봤다. 군생활을 하사관으로 남들보다 좀 길게 했으니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때 하던 일이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인데, 그만두고 딴 걸 한단다.
고모도 나도 만신할미가
가고 나서
만신창이가
된 거 같았다. 서로 마주 보고는
투털거렸다.
"재수 없
게 왜 떡볶이 타령이야! 노친네!"
"그러게!
뭔 말을 하는 건지, 고모! 잊어버려!"
"어허! 강화에선 젤 용한 무당이야!
허수히 듣지 말어!"
"이모는 괜히 사람
이상하게....... 쯥."
고모는 떡볶이란 단어에 분이 삭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시장을 경유해 집을 갈라치면, 고모가 시장 단속반에 쫓겨, 황급히 옷보따리를 싸매는 모습을 보곤 했다.
좀 살만하고, 아직 고생한 보람도 모르는 터에, 점쟁이가 이러쿵, 저러쿵 자신의 앞날 얘기를 하니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나도 내색은 못했지만,
떨떠름 한건 사실이다. 만신할미는 몇 마디 나에게 덧붙였다. 형제지간이 멀어지니 맏이로서 무조건 참아야 유지가 된다는 둥, 오십은 넘어야 운이 풀린다느니 하는 말이었다.
노인분들이 하는 말씀이니, 당시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재미로 넘겼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고, 그렇게 됐다.
고모는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막내아들의 도박벽으로 애를 태우셨다. 경마, 경륜, 경정 등,
경(競) 자 들어가는 건, 다 하는 아들 때문에 결국 포목점에서 시장 한편에 분식집을 하니, 그 말이 맞아떨어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후, 몸에 이상이 생겨
영업직을 그만두고, 지금의 일에 삼십이 넘어 들어섰다.
동생들과도 이런저런 분란을 겪고,
전만 같지 못한 관계가 되었다. 한 가지 기댈 것은 오십이 넘어 운이 트인다고 하셨는데, 아직 느낄 만큼의 행운은 오지 않았다.
사람에게 팔자(八字)가 과연
있는 걸까?
의식하고 싶지는 않다. 설사 의식을 한다고 해도,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좀 드니 그날의 만신할미가 하신 말이, 전혀 허무맹랑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점괘나 사주풀이 등을 믿는 눈치다. 전에 아이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번민을 할 때, 졸업을 하고 진로를 고민할 때 어디가 용하다는 등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마뜩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곤 한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그런 표적이 되기 쉽다.
설사 팔자라는 것이 있다고 한들,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하루 만족하고 살면 그뿐, 더는 나를 현혹하는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세상을 살다 보니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면도 있고, 신비한 현상을 나도 봐왔다. 그러나 '결정론적 인간관'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늘 각성하고 노력으로 일관되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는가!
.
..
알 수도 있나?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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